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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42] 생태계

바람아님 2014. 4. 3. 17:34

(출처-조선일보 2011.12.26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요즘 들어 부쩍 '생태계'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온다. 
원래에는 내가 몸담고있는 학문인 생태학에서만 쓰던 용어인데 언제부터인가 담을 넘어 동네방네 번지고 있다. 
생태계라는 단어를 도입하여 가장 본격적으로 사용한 분야는 아마 경영학일 것이다. 
<경쟁의 종말>의 저자 제임스 무어(James Moore)는 1993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에 기고한 
논문에서 처음으로 기업 생태계(business ecosystem)의 개념을 소개하여 맥킨지 최우수논문상을 받았다. 
그 후 문화 생태계, 벤처 생태계, 앱 생태계 등 온갖 종류의 생태계들이 탄생했다. 
하지만 생태학자인 내가 보기에는 이들 모두 생태학에서 용어만 빌렸을 뿐 원리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무어는 기업 생태계"상호작용하는 조직이나 개인들에 기반을 둔 경제공동체"라고 정의하고, 그 구성원들이 함께 진화하며 
서로의 역할을 다듬어간다고 설명했다. 기업 생태계의 개념이 소비자를 엄연한 구성원으로 간주하여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 것은 분명히 참신한 시도였지만, 무어가 그려낸 구도는 엄밀히 보아 생태계가 아니다. 
자연 생태계는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 등 '생명환(circle of life)'을 구성하는 생물들뿐 아니라 이들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물질과 에너지를 제공하는 모든 물리적 환경을 포괄한다. 
물리적 환경을 제외한 생물 공동체를 생태학에서는 군집(community)이라 일컫는다.

생태계의 개념을 도입하여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생 발전'하고 기업 생태계의 구성원들이 고르게 '동반 성장'하길 원한다면 
모든 걸 기업 군집의 자율에 맡겨서는 안 된다.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시장 개입을 비판하지만, 바람직한 물리적 환경은 시장의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풍요로운 군집생태를 위한 공간, 자원, 기후조건 등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생태계가 완성된다. 국가가 직접 시장의 생물군집 한가운데에 뛰어들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지극히 
유치하지만, 소비자의 권익을 위해 어느 정도의 국가 개입은 불가피하다. 
새해에는 우리 사회 곳곳에 훌륭한 생태계들이 많이 탄생할 수 있도록 풍성한 사회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