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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77] 4분33초

바람아님 2014. 5. 29. 10:06

(출처-조선일보 2012.09.03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전시가 전례 없이 네 팀의 작가들을 초대하여 열리고 있다. 
못 말리는 오지랖 덕택에 나는 이번 전시에 초대된 문경원·전준호 작가와 함께 일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들이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현대미술제 카셀 도쿠멘타 제13회 전시회의 초대작가로 선정되어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재조명하는 '뉴스 프롬 노웨어(News from Nowhere)'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뜻밖에도 과학자인 나를 부른 것이다.

오랜 고심 끝에 나는 '인간실록편찬위원회'라는 글을 쓰며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먼 훗날 인간이 멸종한 후 새로운 지적동물들이 지구의 역사를 돌이켜보며 마치 조선왕조실록처럼 
인간에 관한 실록을 편찬한다는 가상의 글이다. 
1917년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이 행위자로서 예술가의 권위에 의문을 던지더니 1964년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 전시가 수퍼마켓 진열과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며 미술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맞았다.

한편, 미국의 로큰롤 가수 척 베리는 1956년 "베토벤아 물러가라, 차이콥스키에게 소식을 전하라"며 음악을 혼란스럽게 했다.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그보다 앞서 이미 훨씬 더 고요하면서도 거센 격랑이 일었다. 
존 케이지의 그 유명한 '4분33초'가 작곡된 해가 1952년이었다. 
청중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오른 피아니스트가 무려 4분33초 동안 건반 하나 누르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만든 소리가 아니더라도 세상에는 늘 '예술적 소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멈추면 비로소 들리는 것들이 있다.

내일은 케이지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뒤샹, 워홀, 케이지의 예술이 진정 예술을 죽여버린 것일까? 
내 글에서 인간실록을 편찬하는 동물들의 세계에는 예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 멸종의 원인을 아무 쓸모도 없어 보이는 예술의 낭비에서 찾으려 했다. 
하지만 내 글은 끝없이 이어지는 위원회의 지겨움을 견디다 못해 종이 여백에 망연스레 알 수 없는 형태의 패턴을 긁적이던 
두 친구의 시선이 마주치는 걸로 끝난다. 
위대한 예술은 정원의 화초가 아니라 자기모순을 딛고 피어나는 잡초이다. 
문경원·전준호 작가의 전시 '공동의 진술―두 개의 시선'에는 또 어떤 모순의 예술이 피어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