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2.09.10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꿀벌이 춤을 추며 동료에게 꿀이 있는 곳을 알려준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1973년 노벨상을 수상한
카를 폰 프리슈(Karl von Frisch)에게는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어 사사건건 문제 제기를 하던 에이드리언 웨너(Adrian Wenner)라는 젊은 학자가 있었다.
꿀벌이 추는 일명 꼬리춤(waggle dance)에 꿀을 따온 꽃밭까지의 거리와 방향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다는 폰 프리슈의 주장에 웨너는 끈질기게 동료가 다녀온 꽃의 냄새를 맡고 그 방향으로 날아나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몇 차례 이 같은 논쟁을 거치면서 웨너는 단숨에 폰 프리슈와 마주앉을 수 있는 지위로 뛰어올랐다는 점이다.
애플이 삼성전자를 캘리포니아로 끌고가 유치할 정도로 편파적인 법정 모의를 연출해내곤 쾌재를 부르고 있다. 적지 않은 벌금을 내게 될지도 모르는 삼성으로서는 심기가 불편할 수 있겠지만, 길게 보면 삼성에 더할 수 없이 훌륭한 호재였다고 생각한다. 애플이 삼성을 가장 껄끄러운 상대라고 만천하에 공표함으로써 이제 삼성은 노키아나 소니를 확실하게 따돌리고 오로지 애플만 상대하면 되는 국면을 맞았다. 게임이 훨씬 쉬워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애플의 집권이 그리 길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덧 지킬 게 너무 많아진 애플은 그 옛날 그들을 성공의 길로 이끌어준 '유저 프렌들리(user-friendly·사용자 친화적인)'
정신을 내팽개친 지 오래다. 아이폰은 애플이 깔아준 멍석 위에서만 잘 놀 수 있다. 일등 자리에 오를수록 두루 품어야 하는데
고독해지기 시작하면 내려올 일만 남은 셈이다.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애플은 삼성을 애써 링 위에 올려준 걸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이다.
최근 새누리당이 안철수 교수에게 사뭇 어설프게 싸움을 건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조금만 더 영악하게 생각했더라면 안철수 교수는 슬쩍 모른 체하고 지금 여론조사에서 훨씬 뒤처져 있는 야권 후보 중의 다른
한 사람에게 싸움을 거는 척했어야 한다. 침팬지 사회의 으뜸 수컷은 아무리 버금 수컷들이 날뛰더라도 좀처럼 먼저 집적거리지
않는다. 권좌를 넘볼 만큼 막강한 버금 수컷을 건드리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다.
게다가 안철수 교수는 웨너가 아니라 삼성전자 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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