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09.06.03 서울대 교수·서양미술사)
초상화가 실제 인물과 똑같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아부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적어도 인상주의 이전까지는 화가들이 인물을 이상화해 그리는 것이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16세기에 활약했던 독일의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the Younger, 1497~1543)은 자신이 파악한 인물의 단점을
훌륭하게 보완해 그려 의뢰인을 만족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던 초상화가였다.
바젤에서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의 초상을 그린 후 그의 소개로 영국으로 간 홀바인은 헨리 8세의 대법관이던 토머스 모어의
초상화를 그렸다. 이런 인연으로 영국에 머물게 된 그는 곧 헨리 8세(재위 1509~ 1547)의 궁정화가가 되었다.
알려진 바와 같이 헨리 8세는 6번이나 결혼을 했다.
첫번째 왕비 아라곤의 캐서린과 이혼하고 두번째 왕비인 앤 볼린을 처형했던 헨리 8세는
세번째 왕비 제인 시무어가 죽자 또다시 새로운 신붓감을 찾고 있었다.
교황 세력에 맞서고자 한 그는 외국 신부를 맞이하는 편이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홀바인을 브뤼셀에 보내 남편을 여읜 지 얼마 되지 않은 덴마크 공주 크리스티나를 그려 오게 하였다.
덴마크의 크리스티나(왼쪽)와 클리브즈의 앤.
이 초상화에서 크리스티나는 수줍은 듯이 약간 돌아선 채 보는 사람을 응시하고 있다.
보석이나 장식이 전혀 없는 검은색 상복은 오히려 지적이면서 단아한 얼굴을 돋보이게 하고 매혹적인 눈은 이 여성에 대해
더 알고 싶게 한다. 정략결혼이기는 했지만 아름다운 여성을 좋아했던 헨리 8세는 이 초상화에 끌려 크리스티나와 결혼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헨리 8세의 경력을 알고 있던 이 똑똑한 미망인은 그와 결혼할 마음이 없었다.
헨리 8세는 다시 홀바인을 네덜란드에 보내 또 다른 신붓감인 클리브즈 공작의 딸 앤을 그려오라고 했다.
헨리 8세는 다시 홀바인을 네덜란드에 보내 또 다른 신붓감인 클리브즈 공작의 딸 앤을 그려오라고 했다.
앤은 외모가 평범했다. 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홀바인은 화려한 의상과 아름다운 보석들로 치장한 모습으로 그렸다.
헨리 8세는 그림을 보고 마음에 들어 결혼하기로 했다.
그러나 앤이 영국에 도착한 날 실제 모습을 보고 크게 실망한 그는 곧 이혼했다.
뛰어난 화가가 그린 초상화가 얼마나 인물을 미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다.
<게시자 추가 이미지>
한스 홀바인,덴마크의 크리스티나(왼쪽)와 클리브즈의 앤 초상화
한스 홀바인 (Hans Holbein the Younger) 1533 년작. 34세의 자화상
대사들 / 한스 홀바인. (1533년, 캔버스 유화, 207x209.5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文學,藝術 > 아트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7] 한국전 참전 기념물 (0) | 2014.07.24 |
---|---|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6] 미술가의 교육 (0) | 2014.07.23 |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4] 법정에 선 미술품 (0) | 2014.07.21 |
[그림이 있는 아침] 화가, 유행을 창조하다 (0) | 2014.07.20 |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130] 神의 전당을 빗물로부터 보호하는 怪獸(괴수)들 (0) | 2014.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