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1.12.01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증자가 공자에게 물었다.
"아버지 말씀을 잘 따르면 효자라 할 수 있을까요?" 공자의 대답은 뜻밖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 옛날에 천자는 바른말로 간쟁(諫諍)하는 신하가 일곱 명만 있으면 아무리 무도해도 천하를 잃지 않고,
제후는 다섯 명만 있어도 그 나라를 잃지 않는다고 했다. 대부는 그런 신하가 셋만 있어도 제 집안을 잃지 않지.
사(士)는 바른말로 일깨워 주는 벗만 있어도 아름다운 이름을 지켜갈 수가 있고,
아비는 바른말 해주는 자식이 있다면 몸이 불의한 일에 빠지지 않게 된다고 했다.
그런 까닭에 불의한 일을 당하면 자식이 아비에게 바른말로 간하지 않을 수가 없고,
신하가 임금에게 바른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법이다.
불의함을 보면 바른말로 아뢰야지, 아버지의 분부만 따르는 것을 어찌 효자라 하겠느냐?"
'효경'"간쟁(諫諍)"에 나온다.
이 말을 받아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쟁신칠인(諍臣七人,바른말하는 신하 일곱 명)"이란 글을 썼다.
취지는 이렇다.
임금은 바른말 하는 신하가 없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바른말을 받아들이지 못함을 근심해야 한다.
말로 간하여 행동으로 받아들이니, 말은 쉽고 행동에 옮기기는 어렵다.
어려운데 임금이 이를 행하면 신하가 쉬운 일을 행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런데 간하는 말은 헐뜯음에 가깝다. 이런 말을 듣고 성내지 않을 사람이 없다.
신하가 간하지 않는 것은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서다.
쟁신이 없다고 투덜대는 임금은 밭을 소유하고도 곡식을 심지 않거나, 농사를 지어놓고 추수하지 않는 농부다.
무도한 임금도 곁에 쟁신이 있으면 나라를 잃는 지경까지 이르지 않는다.
쟁우(諍友)는 실족을 막아주고 쟁자(諍子)는 아비를 환난에서 지켜준다.
문제는 아무리 이런 신하, 이런 벗, 이런 자식이 있어,
바른말을 해주어도 성만 내고 들을 마음이 없거나,
기쁘게 듣는 척하면서 끝내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면
국가와 가정과 개인의 흥폐(興廢)가 그만 여기서 갈리고 만다는 점이다.
자공(子貢)이 벗에 대해 묻자, 공자의 대답이 이랬다.
"충고해서 잘 이끌어주다가 도저히 안 되겠거든 그만두거라. 자칫 네가 욕보는 일이 없도록."
벗 사이에 바른말이 잦으면 사이가 멀어진다고도 했다.
제일 슬픈 것은 말을 해도 도저히 안 되니 제 몸이라도 지키려고 아예 입을 닫고 곁을 떠나버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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