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정민의 세설신어 [135] 수락석출(水落石出)

바람아님 2014. 11. 14. 14:57

(출처-조선일보 2011.12.08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1082년 7월 16일과 10월 15일, 소동파는 적벽에 놀러 가 전후 '적벽부(赤壁賦)'를 각각 남겼다. 

당시 그는 왕안석의 신법(新法)을 반대했다가 황주(黃州) 땅에 유배된 죄인의 신분이었다. 

7월의 흥취가 거나했던지, 동파는 11월 보름에 벗들과 다시 겨울 뱃놀이를 감행한다. 

똑같은 장소임에도 이곳이 그때 여긴가 싶으리만치 느낌이 달랐다. 

맑은 바람이 천천히 불어오고, 물결조차 일지 않던 그 강물은 물살이 빨라져 소리를 냈다. 

이슬이 하얗고 무성하던 잎은 모두 땅에 지고 없었다.

배가 적벽 아래로 들어서자 깎아지른 벼랑은 줄어든 물 때문에 갑자기 천척이나 높아 보였다. 

훌쩍 키가 커진 산으로 인해 하늘의 달도 유난히 조그맣게 느껴진다. 

물속에 잠겼던 바위가 수면 위로 삐죽 솟았다. 

는 자꾸 딴 곳에 온 것만 같아서 두리번거리다가 

"고작 날짜가 얼마나 지났다고, 강산을 알아볼 수조차 없구나!" 하는 탄식을 발했다.


남효온(南孝溫)은 '적벽승주(赤壁乘舟)'에서 이때 일을 이렇게 노래했다. 

"신법(新法)은 천하에 가득 넘치고, 세상은 한밤이라 새지 않누나. 

쓸쓸히 떠돌던 임술년 가을, 동정호는 저 하늘 끝에 있구나. 

길게 요조장(窈窕章)을 노래하다가, 호의현상(縞衣玄裳) 학(鶴)에게 마음 붙였지. 

바위 밑동 가을 물에 잠기어 있고, 산은 높아 흰 달이 조그마하다

(新法滿天下, 人間夜未曉. 飄零壬戌秋, 洞庭天一表. 長歌窈窕章, 托契玄裳鳥. 石脚蘸秋水, 山高白月小)." 

세상은 캄캄한 어둠 속인데, 불의한 세력이 그 틈을 타고 횡행한다. 

마음 맑은 사람은 변방으로 쫓겨나 하늘 끝 절벽 아래서 조그맣고 창백한 달빛을 보며 새벽을 기다린다.

수락석출(水落石出), 초가을에는 안 보이던 바위가 제 생긴 대로의 몰골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 

소동파야 적벽강의 달라진 경물을 묘사하자는 뜻이었지만, 

후대에는 흑막이 걷혀 진상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다는 의미로 쓴다. 

추운 시절이 왔다. 물길이 넉넉할 때는 다 품어 안아 가려졌던 실상이 하나 둘 드러난다. 

저기 저런 게 숨어 있었구나. 하마터면 배 밑창에 구멍을 낼 뻔했다. 섬뜩하다. 

잠깐 만에 저렇듯 본색을 드러내는 것은 보기에 민망하다. 

기실 산도 물도 바위도 원래 변한 것이 없다. 

내 눈이 이리저리 현혹된 것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