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作品속 LIFE 453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37] 최고 권력자 딸의 친정살이

조선일보 2021. 11. 17. 03:02 나의 흰색은 녹아버렸고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두 달 전,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고 있었다. 아무런 삶의 흔적도 남기지 않은, 라틴어를 가르쳐온 일개 교사라는 것을. 지금 나는 눈을 바라본다. 눈 역시 흔적을 남기지 않고 녹으리라. 하지만 이제 나는 눈이 규정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 - 아멜리 노통브 ‘오후 네 시’ 중에서 정부 수장의 딸과 그 가족이 1년 가까이 청와대에서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아빠 찬스’와 ‘관사 부동산 재테크’라는 비난이 일자 여당 의원 윤건영은 권력자의 사생활은 보호되어야 하며 딸의 친정살이는 인간적인 면에서 이해해줄 일일 뿐, 불법이 아니라고 변호했다. 심지어 ..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36] 선거, 사회를 통제하는 또 다른 방식

조선일보 2021. 11. 10. 03:03 - 전쟁에 진리나 아름다움이나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사람들은 조용한 삶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좋다는 식이었어. 우리들은 그 후부터 통제를 계속해왔어. 물론 그것은 진실을 위해서는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지. 하지만 행복을 위해서는 아주 좋은 일이었어. 인간은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필연적으로 대가를 치러야 해. 자네들은 지금 그런 대가를 치르고 있어.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중에서 과학이 발달한 ‘멋진 신세계’에서는 인간도 공장에서 생산된다. 크게 다섯 부류로 나뉜 사회 계급에 따라 외모와 지능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은 정해진 역할에 맞게 양육된다. 현실에 만족하도록 세뇌되기 때문에 누구도 불만을 갖지 않는다. 기분 나쁜 일이 생겨도 국가가 무제한..

[김규나의 시네마 에세이 <56> 킹메이커] 정치, 괴물이 되어서라도 살아남으려는 자들의 전쟁

이코노미조선 2021. 11. 09. 05:27 미국 대선을 앞두고 치러지는 민주당 후보 경선, 선거 캠프 본부장 폴과 보좌관 스티븐은 주지사 모리스를 명실상부한 유력 후보로 만들어간다. 오랜 경험으로 정치판 속성을 잘 알고 노련하게 대처하는 폴과 달리 스티븐은 유능하긴 하지만 아직은 순수한 정치 초년생이다. 그는 모리스야말로 국가와 국민의 삶을 바꿀 인물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타임’의 정치부 기자는 모리스 또한 가면을 쓴 정치인일 뿐, 사람한테 눈이 멀면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된다고, 곧 실망하게 될 거라며 충고한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모리스가 대통령이 되면 스티븐의 직장이 백악관으로 바뀔 뿐이라고도 냉소한다. https://news.v.daum.net/v/20211..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35] 설거지론과 국민 퐁퐁단

조선일보 2021. 11. 03. 03:02 ‘그대의 가면이 벗겨질 때 연인은 그대를 미워하리. 그대의 운명이 스러질 때 아름다운 모습도 시들어지리. 그대의 삶이 나뭇잎처럼 떨어지고 빗방울처럼 흩뿌려지고, 그대가 쓴 베일은 슬픔이 되고 머리에 얹은 관은 괴로움이 되리니.’ 속았다는 생각이 들면 사람의 마음이란 매정해지기 마련이다. 테스의 존재란 지금의 클레어에게 한낱 미물과 다름없었다. - 토머스 하디 ‘더버빌가의 테스’ 중에서 최근 ‘설거지론’과 ‘퐁퐁남’이라는 말이 이슈다. 화려한 연애 경력이 있는 여성인 줄 모르고 결혼해서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신분 상승까지 제공한 순진하고 능력 있는 남성의 삶을 조롱하거나 자조하는 말이다. 과거가 무엇이든 지금 사랑하고 존중하며 알뜰살뜰 산다면 문제 될 게 없을 ..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34] 과학은 우주로 가는데, 정치는 퇴화 중

조선일보 2021. 10. 27. 03:00 “행복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든 일을 겪더라도 그것이 진정 옳은 길을 가는 중에 생긴 일이라면,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그 한 걸음 한 걸음은 모두 진정한 행복에 가까워지는 것이겠지요.” “네, 맞아요. 최고의 행복에 이르기 위해 갖가지 슬픔을 겪어야 하는 것도 모두 하늘의 뜻이랍니다.” - 미야자와 겐지 ‘은하철도의 밤’ 중에서 인공위성 발사체 누리호가 지난 21일, 우주를 향해 날아올랐다. 3단계 분리를 성공시키며 목표했던 높이까지는 도달했으나 탑재했던 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1992년 ‘우리별’이라는 작은 위성을 시작으로 우주 개발 사업에 뛰어든 지 30년, 한국은 이제 1t이 넘는 물체를 우주로 쏘아 올릴..

[김규나의 시네마 에세이 55] 언페이스풀-시간의 장난, 낯선 것들의 위험한 유혹

이코노미조선 416호 2021년 10월 18일 저렇게 아름다운 집에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많은 사람이 부러워할 만한 전원주택의 전경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출근하는 남편과 등교하는 아이의 뒷바라지로 분주한 아침을 보낸 코니는 여덟 살 아들의 생일선물을 사러 시내에 나갔다가 지독한 돌풍을 만난다. 머리카락을 흩어놓고 옷자락을 풀어 헤치고 스커트를 뒤집으며 방향을 분간할 수 없게 하는 바람. 그녀는 이리저리 바람에 떠밀리다가 운명처럼 한 남자와 부딪혀 넘어진다. 기사 전문(全文)은 아래 링크로 해당기사와 연결됩니다 [김규나의 시네마 에세이] [55] 언페이스풀-시간의 장난, 낯선 것들의 위험한 유혹 행복은 눈부시고 화려하고 짜릿한 그 무엇이 아니었다. 셔츠를 뒤집어 입고 나와 투덜거리는 남편을 달래 출근시키..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32] 절대 추락하지 않는 사람들

조선일보 2021. 10. 13. 03:02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추락하셨죠?” 추락했다? 그래, 추락이 있었다. 그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대단하다? 그것이 그에게 맞는 말인가? 그는 자신을 점점 더 모호해져 가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역사의 변방에 속하는 인물. 그는 말한다. “어쩌면 가끔씩 추락하는 것도 우리에게 좋은 일인지 모르지요. 부서지지만 않는다면요.” - 존 M. 쿳시 ‘추락’ 중에서 임기가 끝나가는 정권의 지지율이 40%대로 여전히 높다고 한다. K방역을 성공으로 이끈 리더, 최고의 외교 협상가, 전략가, 승부사이기 때문이란다. 경기지사는 대장동 게이트 논란에도 불구하고 과반의 지지를 얻어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손바닥에 왕(王) 자를 쓰고 TV 토론에 ..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31] 권력자라면 오이디푸스처럼

조선일보 2021. 10. 06. 03:04 보라. 이 사람이 오이디푸스왕이다. 시민들 중 그의 행운을 부러워하지 않은 자 누구였던가? 하지만 보라. 그가 얼마나 무서운 재난의 크나큰 파도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는지. 그러니 필멸의 인간은 마지막 날을 볼 때까지는 누구도 행복한 사람이라 부르지 말아야 한다. 그가 어떤 고통도 겪지 않고 삶의 경계를 넘어서기 전까지는. -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왕’ 중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2주 더 연장되었다. 영업 시간 제한과 사적 모임 통제로 지난 2년간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일반 시민의 생활은 점점 더 큰 어려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11월부터 ‘위드 코로나’ 시대로 전환될 거라지만 마스크나 백신 접종 확인증이 없으면 사회 활동에 제약을 받는 등, 강제 방역 정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