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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희의 영화 같은 하루] [57] I don't want to survive. I want to live.

조선일보 2022. 02. 12. 03:00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고 싶습니다 1840년대 미국, 노예 수입이 금지되자 자유주에 거주하는 흑인을 납치하여 노예제를 유지 중인 주(州)로 팔아넘기는 인신매매가 빈번히 벌어진다. 흑인 솔로몬 노섭(추이텔 에지오포 분)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음악가로 새러토가에서 가정을 꾸리고 자유인 신분으로 평온한 삶을 사는 중이다. 어느 날 워싱턴에서 온 서커스 관계자들이 연주자를 구한다며 노섭에게 접근하여 술을 대접한다.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던 노섭은 흥겹게 술을 마시다가 정신을 잃는다. 정신을 차려 보니 손발이 묶인 채 골방에 갇혀 있다. 솔로몬 노섭의 자전 소설을 바탕으로 한 ‘노예 12년(12 Years a Slave.2014)’의 한 장면이다. https://new..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48] 세금 도둑이 너무 많다

조선일보 2022. 02. 09. 03:02 “정말 신기한 건, 관료들이 정한 법을 제일 먼저 어기는 사람들이 관료들 본인이라는 사실이에요.” 기자가 말했다. “지난 7년간의 입출금 내역도 확보했습니다.” 와이셔츠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헤매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과거를 진지하게 파기 시작하면, 대개는 그 사람 혼자만 간직하는 게 낫겠다 싶은 것들을 발견하게 되죠.” - 프레드릭 배크만 ‘오베라는 남자’ 중에서 경기도지사였던 대선 후보의 아내가 “남편이 좋아한다”며 한우와 샌드위치 등을 구입하는 데 법인 카드를 썼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은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이 너무 많다”고 말한 적 있다. 사익을 위해 국민의 세금을 쓰는 것이 엄연한 도둑질이라는 뜻이다. https://news.v.daum..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47] 선물하고 뺨맞기

조선일보 2022. 01. 26. 03:08 여우가 두루미를 식사에 초대했다. 여우는 납작한 접시에 수프를 담아 내왔다. 부리가 긴 두루미는 수프를 한 모금도 먹을 수 없었다. 여우는 두루미가 먹지 못한 수프까지 싹싹 핥아 먹었다. 화가 난 두루미는 며칠 후, 여우를 초대했다. 두루미는 목이 긴 호리병에 고기를 담아 내왔고 여우는 먹을 수 없었다. 두루미는 여우의 고기까지 맛있게 먹어치웠다. - 이솝 우화 ‘여우와 두루미’ 중에서 주한 일본 대사가 청와대의 설 선물을 돌려보냈다. 선물 상자에 독도가 그려져 있는 게 불쾌하다는 이유였다. 그래도 선물을 반송하다니, 하고 생각했지만 몇 해 전 도쿄 한일 정상회담 때의 오찬이 떠올랐다. 아베 전 총리가 취임 1주년 축하 케이크를 선물하자 ‘단것을 잘 못 먹는다..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46]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

조선일보 2022. 01. 19. 03:02 균열은 바로 내 눈앞에서 순식간에 벌어졌다. 한줄기 회오리바람이 사납게 몰아쳤다. 꽉 찬 보름달이 눈앞에서 폭발하는 것 같았다. 거대한 벽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머릿속이 핑핑 돌았다. 벼락처럼 길고도 사나운 굉음이 들려왔다. 저택을 둘러싸고 있던 깊고 검은 호수가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어셔가의 잔해를 집어삼켰다. - 에드거 앨런 포 ‘어셔가의 몰락’ 중에서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나 됐다고 사건·사고의 연속이다. 지난 5일, 평택에서 발생한 냉동 창고 화재 진압 과정에서 세 명의 소방관이 안타깝게 순직했다. 14일엔 광주광역시의 아파트 건축 현장에서 외벽 붕괴 사고가 일어나 다수의 실종자와 사망자를 낳았다. 북한도 5일과 11일, 14일과 17일, 벌써 네 ..

[김규나의 시네마 에세이 <59> 라이프 오브 파이] 해피엔딩? 새드엔딩? 당신에게 달렸어요!

이코노미조선 2022. 01. 17. 19:42 인간은 안정된 삶을 바라지만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면 권태에 질식하고 만다. 생명을 살아가게 하는 건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을 때, 부양해야 할 책임을 느낄 때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아픔으로 발버둥 치면서 내면에 있는 줄도 몰랐던 힘이 솟구치고,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비로소 감사의 기도가 터져 나온다. 파이라 불리는 소년의 세계는 거의 완전했다. 동물원을 운영하는 부모님 슬하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고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 할 것 없이 성전의 경계를 넘나들며 세상 모든 신을 사랑하는 천진한 아이였다. 원래 이름 피신이 오줌싸개(pissing)라는 영어 발음과 비슷해서 놀림당하는 것이 유일한 고..

[논설실의 서가] 화가들이 사랑했던 비밀공간 '정원'

디지털타임스 2022. 01. 16. 18:40 화가들의 정원 재키 베넷 지음/김다은 옮김/샘터사 펴냄 수많은 화가들이 화가이자 정원사로의 삶을 살기를 원했다. 정원은 사시사철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매번 새로운 시선과 느낌을 주는 소재였다. 화가들은 정원에서 꽃과 채소, 과일을 키우면서 소박하고 단순한 영감을 얻었다. 그들은 정원이라는 모티프를 반복해서 그리면서 화법을 다듬고 완성해나갔다. 정원은 화가들의 정치적 위기나 고난의 시기에 휴식과 성장, 안식처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림만큼이나 정원을 사랑했다 화가들이 직접 만들고 살아간 집과 작업실 그리고 정원을 찾아가는 여정이 담겨있는 책이다. 전반부는 혼자 또는 가족들과 살아가며 독립적으로 작품활동을 했던 화가들의 이야기, 후반부에는..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45] 프랑켄슈타인이 될 것인가?

조선일보 2022. 01. 12. 03:01 노예여. 전에 내가 알아듣게 설명해주었건만, 내가 겸손하게 대해 줄 필요가 없다는 걸 너 스스로 증명했구나. 내게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너는 네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네가 대낮의 햇빛조차 증오스러워할 만큼 비참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너는 내 창조자지만, 내가 네 주인이다. 복종하라! -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중에서 선거 전에는 국민의 종이라며 땅바닥에 엎드려 표를 구하지만 선출되고 나면 ‘네가 뽑았지만 내가 너의 주인이다. 복종하라’며 자유를 억압하고 괴롭히는 정치인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어떤 세상을 창조하고 싶은 것인가? 우리가 만들고 남긴 것들이 훗날 우리의 이름으로 기억될 것이다. 한번 결정되면 돌이킬 수 없다. 괴물을 만..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44] 불안과 단절의 시대, 호랑이 같은 본능으로

조선일보 2022. 01. 05. 03:04 나는 태평양 한가운데 고아가 되어 홀로 떠 있었다. 몸은 노에 매달려 있었고 앞에는 커다란 호랑이가 있고, 밑에는 상어가 다니고, 폭풍우가 몸 위로 쏟아졌다. 이성적으로 이런 상황을 본다면,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물에 빠져 죽기를 바라리라. 하지만 나는 힘껏 노에 매달렸다. 무조건 매달렸다. 공포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호랑이보다 태평양이 더 두려웠다. - 얀 마텔 ‘파이 이야기(라이프 오브 파이)’ 중에서 2022년 호랑이해가 시작되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정권이 곧 막을 내린다. 그렇다고 더 좋은 시대가 온다는 약속은 없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과 세상이 진화하고 진보하는 것 같아도 그것이 꼭 지성과 발전과 안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