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설왕설래] 어머니 곽낙원

바람아님 2015. 6. 27. 09:05

세계일보 2015-6-26

 

하나뿐인 아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운명이었다. 그 어머니의 심정이 오죽했으랴! 그러나 감옥소에서 아들을 면회한 어머니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대견하다는 듯 오히려 아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네가 경기감사를 한 것보다 더 기쁘다." 당시 스무 살의 아들은 일본군 중위를 살해한 죄목으로 사형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 이야기다. 독립운동의 호랑이를 낳은 '어머니 호랑이'의 풍모 그대로다.

어머니 호랑이의 기개는 망명지 중국에서 더 빛을 발했다. 고종의 특사로 풀려난 김구가 나중에 독립운동을 벌이자 어머니는 노구를 이끌고 국경을 넘었다. 아들의 편지를 받고 한걸음에 산을 넘고 물을 건넜다. 상해 임시정부에 도착한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아무리 배고픈 게 독립운동이라지만 임시정부의 실상은 상상 이상이었다. 양식이 없어 다들 굶어죽을 지경이었다.

 

어머니는 팔을 걷어붙였다. 근처 고급 주택가의 쓰레기통을 뒤져 배추 시래기로 죽을 끓였다. 그날부터 요인들을 먹이는 일은 곽 여사의 몫이었다. 구걸을 하든, 모금을 하든 어머니는 '자식들'을 절대 굶기지 않았다.


다행히 윤봉길 의거 이후에 중국의 지원이 시작되면서 형편이 좀 나아졌다. 곽 여사의 생일이 있던 어느 날이었다. 임시정부 요인의 부인들이 돈을 모아 좋은 옷을 한 벌 선물했다. 그것을 받아든 여사의 얼굴은 단번에 흙빛으로 변했다. "남편들은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 하는데, 여편네들은 호의호식 하는가!" 여사는 옷을 갈기갈기 찢어 밖에 내던졌다.

곽 여사의 생일이 다가오자 청년들도 생일잔치를 준비했다. 여사가 눈치 채고는 "내 입맛대로 음식을 사먹을 테니 돈으로 달라"고 했다. 축하금을 챙긴 여사는 그 돈에 자신의 쌈짓돈까지 탈탈 털었다. 며칠 후 여사가 다시 청년들을 찾았다. "이것으로 나라를 되찾으시게." 여사가 내민 것은 권총이었다.

어제 서울 용산 백범김구기념관에선 김구 선생의 66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매년 돌아오는 행사지만 아들 김구를 민족지도자로 이끈 '독립운동가 어머니'의 언급은 한 마디도 없었다. 내년 추모식에선 곽 여사에 대한 짤막한 소개말이라도 듣고 싶다. 일제에서도 있었던 위대한 모자 상봉이 대한민국의 기념관에서 못 이뤄질 이유가 없다.

배연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