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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봄을 탐하다

바람아님 2013. 5. 17. 23:10
마원의 ‘산경춘행도’(13세기 초, 비단에 수묵담채, 타이베이 고궁박물원)

마원의 ‘산경춘행도’(13세기 초, 비단에 수묵담채, 타이베이 고궁박물원)


꽃이 만발한 어느 봄날. 선비가 모처럼 산책을 나섰다. 사색을 즐기며 구불구불 오솔길을 걷던 그는 버드나무 아래에서 발길을 멈췄다. 푸드덕 날갯짓하며 비상하는 한 마리 꾀꼬리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순간 시 한 수가 절로 입가를 맴돈다. “옷소매 스치는 들꽃은 저마다 스스로 춤추고 / 사람 피해 달아나는 새는 울음을 멈추네.”

남송대의 화가 마원(馬遠)의 ‘산경춘행도(山徑春行圖)’는 봄 경치에 흠뻑 젖은 선비의 봄나들이 정경을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선비를 둘러싼 자연은 마치 필터라도 씌운 것처럼 뿌옇다. 왼편의 완만한 산등성이는 실루엣만 드러내고 있고 오른편에는 한 마리 새가 텅 빈 허공에 자취를 남길 뿐이다. 화가가 의도한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양쯔강 이남의 강남지방은 비가 잦고 습기가 많다. 화가는 안개가 짙은 풍경과 일상적으로 마주친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에게 익숙한 풍경을 화폭에 옮기게 된다. 높은 산을 선명하게 그리는 화북산수와 대비되는 강남산수는 그렇게 출현했다. 그림도 자연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마원의 그림은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