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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파니에서 아침을' 오드리 헵번

바람아님 2013. 5. 16. 22:42


“내 외모는 쉽게 따라할 수 있어요. 머리카락을 틀어올리고 큰 선글라스에 타이트한 검정 드레스만 입으면

됩니다.” ‘20세기 최고의 여배우’로 평가받는 오드리 헵번이 자신의 외모는 대단한 게 아니라며 자주 했던

말이다. 헵번이 인기배우를 넘어 ‘시대의 아이콘’이 된 건 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60대의 나이에 아프리카

오지에서 펼친 열정적인 봉사 활동이 그를 더욱 빛나게 했다.

헵번은 84년 전(1929년) 오늘, 벨기에 브뤼셀에서 은행가 아버지와 귀족가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헵번의 어릴적 꿈은 발레리나였지만, 큰 키(170㎝)가 문제였다. 모델과 연극무대 단역을 전전하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소설가 콜레트에게 발탁돼 연극 ‘지지’ 주연을 맡았고, 이 공연을 본 윌리엄 와일러 감독(1959년 ‘벤허’ 연출)을 만나 영화 ‘로마의 휴일’(1953)을 탄생시켰다. 첫 주연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까지 거머쥐었다. 영화 ‘사브리나’(1954)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 등을 잇따라 성공시킨 뒤 1964년

‘마이 페어 레이디’를 찍을 때는 남녀 배우를 통틀어 사상 첫 100만달러 개런티를 받는 스타가 됐다.

영화와 달리 인생사는 순탄치 못했다. 1954년 배우 멜 페러와 결혼했지만 14년 만에 이혼했다. 1970년

이탈리아 의사 안드레아 도티와 재혼했으나 또다시 9년 만에 헤어졌다.

1989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혼은 그대 곁에’가 헵번의 마지막 영화였지만, 그에겐 영화 못지않은

인생 후반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무대는 아프리카였다. 1988년 유니세프 친선대사가 되면서 극빈국 50여

개국을 돌아다녔다. 1992년 소말리아 봉사활동 중 심한 복통을 느낀 그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직장암

판정을 받고 석 달 뒤인 1993년 1월 스위스에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