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설왕설래] 대통령이란 자리

바람아님 2016. 4. 28. 09:01
세계일보 2016.04.27. 20:35

“이 친구가 곧 이 자리에 앉겠지. 그리고 ‘이것 해라, 저것 해라’ 하겠지. 하지만 되는 게 아무것도 없을걸. 불쌍한 아이크.”

미국의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8년 임기를 마치고 백악관을 떠나면서 후임인 아이젠하워에게 남긴 어록이다. 미 정치학자 리처드 노이슈타트가 ‘대통령의 권력’에서 언급한 사례다. 대통령직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마음먹은 대로 정책을 추진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투표로 응징하는 국민은 물론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야당, 언론, 이익단체 등 신경 써야 할 시어머니 같은 존재가 한둘이 아니다.


흔히 ‘제왕적 대통령제’로 불리는 우리나라 대통령도 ‘고난의 여정’을 겪는다. 4수(修) 끝에 대통령직에 오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초 김종필 총리 인준안 표류에 측근들에게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여소야대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말 “청와대가 감옥”이라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중반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한나라당에 절반의 권력을 이양하는 대연정 제안, 임기 말 대통령 중임제 개헌 제안까지 파란의 연속이었다. 김병준 전 청와대정책실장은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고 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대통령 자리를 역삼각형으로 비유했다. 대통령이 처리해야 할 일은 역삼각형 윗변처럼 많은데 이를 수행할 권력 기반은 역삼각형 아래 꼭지점처럼 좁아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고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그제 언론간담회에서 비슷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혼자 가만히 있으면 너무 기가 막혀 마음이 아프고 내가 국민들에게 더 만족스러운 삶을 마련해주기 위해 대통령이 됐고 열심히 밤잠 안 자고 고민해서 왔는데 대통령이 돼도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나중에 임기를 마치면 저도 엄청난 한이 남을 것 같아요.” 미국처럼 4년 중임도 아니고 5년 단임제인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은 자신이 남길 업적, 유산(legacy)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역대 대통령 모두 그런 고민을 했고, 권력의 한계를 느꼈다.


노이슈타트는 결국 대통령의 힘은 끊임없는 설득에서 나온다고 했다. 국민, 국회와 소통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지름길’이 있긴 하다. 대통령직을 먼저 거쳐간 이들로부터 경험을 전수받는 거다. ‘대통령과 국가경영’을 쓴 김충남 박사는 한국 대통령제 문제점으로 “전직 대통령으로부터 교훈을 얻는 제도적 기억장치가 없다는 것”을 꼽았다. 하지만 전·현직 대통령 회동은 흔치 않다. 박 대통령은 한 차례도 없었다. 전직 대통령의 경험은 공유 자산인데 우리나라에선 매몰비용이 되고 만다.


황정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