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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바디스와 행로난] (19) 명재상 자산, 이성적 굴복과 계산적 당당함으로 강대국에 맡서다

바람아님 2016. 11. 11. 23:57
경향신문 2016.11.11 19:25

변혁의 시기, 지도자의 조건을 묻는다

청대 서화가 김농(金農·1687~1763)이 그린 자산의 모습. 이미지 상단에는 공자의 자산에 대한 평가가 쓰여 있다. “군자의 도 네 가지를 지니고 있으니, 자신의 행위가 공손하였고, 윗사람을 섬김에 공경하였으며, 백성을 양육함에 은혜로웠고, 백성을 부림에 의로웠다.”

유엔(UN)에서 똑같이 한 표의 투표권을 지닌다고 하여 미국과 한국이 대등하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선 미 대선 개표 상황이 실시간으로 보도되지만, 우리 대선 개표 상황이 과연 미국에서도 실시간으로 보도될까?


■공자를 울린 명재상 자산

유엔 회원국은 190여 나라에 이른다. 그들은 각기 유엔에서 한 표씩 행사한다. 그렇다고 이들 모두가 대등하다고 할 수 없음은 너무나 분명하다. 형식적으론 동등해도 실질에선 힘이 현격하게 차이가 있기에 그렇다. 국제사회가 강대국과 그 여집합인 약소국으로 나뉘는 현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21세기 지구촌만의 얘기가 아니다. 저 옛날 춘추시대도 그러했다. 당시 중국에선 천자를 정점으로 하는 기존 질서가 급격하게 붕괴되고 있었다. 지역 군주급인 제후들은 저마다 힘을 키워 천자의 권위가 무너진 중원에서 최강자가 되고자 했다. 대국은 대놓고 소국을 압박했고, 소국은 대국 눈치 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라 차원에서만 그랬음이 아니다. 대국, 소국 가릴 것 없이 힘 있는 이들의 강짜가 난무했다. 어디서든 난신적자가 활개 쳤고, 갖은 몰상식과 몰염치가 판치고 있었다.


자산이 법조문을 정(鼎)에 새겨 넣는 모습을 후대에 재현한 그림. 이는 중국사 최초의 성문법이었다.

이런 시대에 자산(子産)은 22년 가까이 정나라의 집정, 곧 재상을 맡아 말 그대로 나라를 ‘무척 잘’ 이끌었다. 당시 정나라가 강대국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다. 정나라는 그저 약소국 중에는 힘이 있었던, 중간 정도의 국력을 지닌 ‘중소국’이었을 따름이다. 그렇다고 가문에 힘이 있어서 가능했던 바도 아니었다. 그의 집안은 당시 정나라에서 유력 가문 축에도 끼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기원전 522년 병사할 때까지 줄곧 집정 자리를 지키면서 안팎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내치와 외교 양면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뤄냈다. 그의 부고를 접한 공자가 눈물을 흘리며 “그는 옛 성왕의 사랑을 물려받아 행한 이였다”고 극찬했을 정도였다.


■폭넓고 속 깊게, 또 멀리 내다보기

공자가 지은 역사서 <춘추>를 해설한 주석서 <춘추좌전>

자산의 행적은 <춘추좌전>에 비교적 상세하게 실려 있다. <춘추좌전>은 춘추시대 역사를 전하는 사서이자 유교 경전으로, 여기에는 ‘명재상 열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탁월한 성취를 보인 재상에 대한 기록이 적지 않다. 특히 자산에 대해서는, 모름지기 중소국의 집정이 되려면 이러해야 한다는 점을 작심하고 보여주려는 듯, 자산의 다양한 면모와 역량을 엿볼 수 있는 기사를 상당한 편폭으로 서술해 놓았다. <춘추좌전>에서 자산에 대한 서술만 따로 모아도 웬만한 책 한 권 분량이 나올 정도이다. 그 가운데는 젊은 시절 그의 안목을 엿볼 수 있는 기사도 있다.


정나라 대부 자국과 자이가 채나라로 쳐들어가 공자 섭을 붙잡으니 정나라 사람들이 모두 기뻐했다. 다만 자산만이 걱정스러워 하며 말했다. “소국이면서 덕망은 없고 무공만 있으니 이보다 더 큰 재앙은 없을 것이다. 초나라가 쳐들어오면 복종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그렇다고 복종하게 되면 진나라가 반드시 쳐들어올 것이다. 진나라와 초나라가 번갈아 정나라를 침공하게 되리니 이제 정나라는 4, 5년 내에 결코 평안할 수 없으리라.(양공 8년)”


기원전 565년, 정나라가 자기보다 작은 채나라를 침공한 사건을 다룬 기록이다. 자국은 자산의 부친으로, 이렇게 말하는 자산더러 “어린놈이 또 그딴 얘기를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을러대기까지 했다. 그러나 역사는 자산의 예측대로 전개됐다. 어린 자산이었건만 그의 식견이 탁월했음이다. 정나라는 남과 북으로 두 강대국 초나라, 진나라와 접해 있었다. 그의 머리엔 이러한 지정학적 조건과 상대적 약자인 정나라가 안정을 구가할 수 있는 방책 등이 자리 잡고 있었던 셈이다. 단기적 이익보다는 중장기적 이익의 구현이 더 나은 길임도 당연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폭넓고도 속 깊게, 또 멀리 내다볼 줄 아는 그의 정신은 부친 자국이 정적이 일으킨 정변으로 급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을 때 더욱 빛났다.

‘자산은 변란 소식을 듣고는 문에 경비를 세우고 가신들에게 업무를 분장하였다. 재물 창고와 무기고를 잠갔고 서류 보관소를 굳게 닫았으며 방비를 완전하게 했다. 그런 다음 대오를 갖추고 나서서 부친의 시신을 거두고 북쪽 궁궐의 반도들을 공격했다.(양공 10년)’

전혀 생각지도, 대비하지도 못한 채 맞이한 부친의 죽음과 내란의 발생, 역도들이 대세를 장악하면 가솔 전체가 떼죽음 당할 수도 있었다.


위의 얘기는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하여 젊은 자산이 보였던 침착함과 사려 깊음을 잘 말해준다. 이렇듯 자산은 젊은 나이에 부분보다는 전체를, 사태 자체보다는 그와 연관된 맥락을 볼 줄 아는 눈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기에 위기상황을 자기 주도적으로 극복할 수 있었고, 나아가 역도를 물리침으로써 국가 위기까지도 해소할 수 있었다.


위기상황일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폭넓고도 속 깊은 그리고 멀리 내다볼 줄 아는 탁월한 정신 덕분에 자산은 집정이 되어서도 소국이라는 약점을 딛고 일어나 자신의 조국을 강한 소국 곧 ‘강소국’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를 집정으로 주조하다

자산이 중소국의 이상적 집정이 된 것은 타고난 역량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철저하게 주조했던 덕분이었다. 앞서 소개한 정신 외에도, 소국의 바람직한 집정이 되려면 여러 역량의 구비가 요청된다. 그런데 <춘추좌전>을 보면 자산은 그 모든 것을 거의 갖추고 있었던 듯하다.


‘선하고자 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자를 대신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중략)… 하늘이 자산을 도와 장애물을 제거하고 있으며 …(중략)… 하늘이 정나라에 화를 내린 지 오래되었지만 자산을 시켜 이를 반드시 종식하게 만들 것이다.(양공 29년)’

자산은 박물군자(博物君子), 곧 박학다식한 군자라는 평가를 널리 받고 있었다. 그는 과거 예법부터 사람의 심리, 질병 원인, 꿈의 의미, 유령의 속성에 이르는 다양한 질문에 대해 시원시원하게 답변했고, 그의 해답은 의혹 해소나 문제 해결에 톡톡히 공헌했다. 이는 학습과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하늘이 그에게 빼어난 기억력과 응용 능력을 허락했다고 해도, 해박한 지식과 정보를 자기 안에 담는 노력을 게을리했다면 이러한 경지에 오를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산의 박학다식함은 폭넓고도 속 깊게, 가능한 한 멀리 내다보고자 하는 그의 정신과 결합되어, 소국의 집정으로서 반드시 갖춰야 하는 정확한 미래예측 능력을 지니는 터전이 되었다. 이는 두 가지 방향으로 발산되었다. 하나는 사태나 정세의 추이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스스로를 예측 가능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었다.


자산은 매사에 최적(最適)의 결과를 도출할 때까지 정확한 정보와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신중함을 잃지 않았다. 첨예할 수밖에 없는 개인 간, 가문 간의 이해관계를 해결할 때엔 반드시 국가 이익이라는 공적 기준을 한결같이 적용했다. 급기야 그는 시대의 기준으로 작동되었다. 유력 가문 간에 권력 다툼이 벌어지자 사람들은 그가 선택하는 쪽을 따랐다. 그가 집정이 되자 사람들은, 그는 하늘의 도리에 부합하는 자라며 반겼다. 자기 스스로를 예측 가능한 존재로 만듦으로써 누구나 믿고 따를 수 있는 존재가 됐던 것이다. 일국의 정사를 도맡아 처리하는 집정이 예측 가능한 존재일 때, 힘 있는 자는 그들대로 또 힘없는 자는 그들대로 미래를 안정적으로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태나 정세의 추이에 대한 정확한 예측도 마찬가지다. 대국과는 달리 소국은 미래에 대한 사소한 오판 하나로 국가가 존폐 기로에 설 수도 있다. 하여 소국일수록 이 능력은 더욱 절실하다.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어야 그에 대해 안정적이고 능률적으로 대비할 수 있기에 그렇다. 앞서 소개했듯, 부친의 돌연한 죽음이란 돌발 상황에서도 치밀하게 미래를 대비했던 그는 이 점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인물이었다.


■이성적 굴복, 계산된 도전

미래 예측 능력이 빼어나다고 함은 미래를 자기 주도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로 인한 이득은 미래에만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미래에 대한 자신감은 현재를 더욱 유연하고 선제적으로 운영하는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산은 “소국의 군주를 보필하는 데 능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빼어난 미래 예측 능력과 유연한 현실 대처 능력은, 실은 대국보다는 소국에 더욱 유용했기에 그렇다.


그는 개인적 차원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은 탁월한 역량을 갖추고 있었지만, 국가적 차원에서는 자신의 조국이 약자라는 엄연한 현실을 늘 출발점으로 삼고 있었다. 언뜻 보면 굴종적이란 오해를 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는 대국에 대해서는 그런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현실적 힘의 차이를 무시하고 자존심을 세우는 것은 지금 당장에만 손해가 됨이 아니요, 미래까지도 그르치게 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 두려움에 젖어 비굴하게 굴었던 것이 아니라, 사려 깊은 안목을 토대로 굴욕적 행동을 ‘이성적’으로 수행했던 것이다.


굴종을 이성적으로 수행한다는 것은 진정 강한 이만이 할 수 있는 경지다. 자산의 머리에는 판 전체를 보는 안목과 미래를 멀리 내다보는 식견이 작동되고 있었기에, 또 쏠쏠한 정보와 해박한 지식을 즉시적으로 동원할 수 있었기에, 그는 의도적으로 굴종적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역설적이게도 대국이나 강자에게 ‘계산적’으로 당당할 수 있었다. 굴종의 순간에도 지성과 이성은 빛을 발했기에, 아무리 몰상식하고 몰염치한 강자일지라도 굴복할 수밖에 없는 명분과 논리를, 또 당사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안을 산출해낼 수 있었다. 덕분에 정나라는 자산이 집정으로 있는 20여 년 동안 안정을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기 삶의 지도자가 곧 참다운 시민

일반적으로 자산은 제나라 관중과 더불어 법가(法家)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법가는 법(法)을 기반으로 천하를 통치한다는 사상으로, 여기서 법은 단지 법조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제도 개혁을 ‘변법(變法)’이라고 표현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법은 사회제도 일반을 가리킨다.


따라서 법을 기반으로 천하를 통치한다는 지향은 사회제도를 체계적으로 갖추고 그것의 운용 원칙을 분명히 한 다음, 이에 의거하여 세상을 다스림을 뜻한다. 그런데 춘추시대 강자였던 제 환공이나 진 문공 등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법가를 기반으로 국가를 개혁한 이들이 자기 당대의 강자가 되었고, 백성들도 상대적으로 안정된 삶을 꾸려갈 수 있었다. 이는, 당시 상황에선 법가가 사뭇 유용했음을 말해준다.


법가를 기반으로 하는 통치가 낫다는 얘기를 함이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자산이 자신을 예측 가능한 존재로 만들었던 것도 법가와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이는, 자산이 스스로를 시대가 요청하는 바와 일치시켜 갔음을 말해주는 증좌다. 달리 말해, 자기 시대에 가장 적합한 지향을 제도적으로 명실상부하게 구현하기 위해 자신을 그러한 지향 자체로 주조해갔음을 일러준다. 오늘날로 치자면, 민주주의가 우리 시대에 가장 적합한 지향이자 제도라는 판단이 서자, 자기 자신을 민주주의 자체가 되도록 주조해갔다는 얘기다.


아무리 세계화가 일상적으로 펼쳐지고, 인공지능 같은 첨단 과학기술이 인간의 한계를 넘나든다고 해도, 민주주의 사회에선 시민 모두가 자기 삶과 사회의 주인이다. 곧 지도자다. 변혁의 시기에 자산을 얘기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는 자기 시대가 요청하는 지향이자 제도 자체가 됨으로써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나아가 사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갈수록 다원화되고 다극화되어가는 세상에서, 스스로가 자기 삶의 지도자가 되지 않는다면 결국 자신의 삶은 오롯이 다른 것에 의해 악용되고 만다. 그런 이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가 몰염치하고 몰상식한 모리배들에 의해 점령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스스로가 민주주의 자체가 되려는 일상적 활동이 절실한 때이다.


<김월회 |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