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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왕은 죽을 날 알았다…경주 첨성대는 다목적 천문대"

바람아님 2016. 11. 13. 23:38
연합뉴스 | 2016/11/13 10:50

서금석 전남대 강사 "삼국유사 '선덕왕지기삼사' 재검토해야"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대에 건설돼 1천400년 가까이 제자리를 지켜온 국보 제31호 경주 첨성대(瞻星臺)는 어떤 연유로 세워진 것일까.


경주 첨성대의 정확한 용도는 학계에서 수십 년째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주제다. 건물의 명칭처럼 별을 보는 천문대라는 설이 우세한 가운데 우물을 형상화했다거나 여신상이자 신전이었다는 견해가 제기돼 왔다.

첨성대가 천문대가 아니라는 주장의 근거로는 출입하기 불편하고, 별을 관측하기에는 정상부가 지나치게 협소하며, 기단과 정자석의 방향이 진남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 제시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금석 전남대 강사는 지난 12일 부산대에서 열린 한국고대사학회 정기발표회에서 '천문대로서의 첨성대에 대한 최근의 이설(異說)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통해 첨성대는 다목적 기능을 갖춘 천문대였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천체만 관측하는 장소가 아니라 1년간의 월일, 해와 달의 운행, 24절기 등을 기록한 책인 역일(曆日)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는 기구였다는 것이다.


경주 첨성대.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 강사는 '첨성대'가 등장하는 사료인 삼국유사 기이편 '선덕왕지기삼사'(善德王知幾三事) 설화를 근거로 첨성대는 천문대가 아니라는 주장을 논박했다.

선덕왕지기삼사 설화는 선덕여왕이 '때를 미리 알았다'(知幾)고 전하는 세 가지 이야기를 말한다. 그중 두 가지 예언은 당 태종이 보낸 모란 씨앗을 심어서 꽃이 피어도 향기가 나지 않을 것과 겨울에 개구리가 울자 적군이 침입해 온 사실을 알아채 습격을 명했다는 것이다.


선덕여왕의 마지막 예언은 그가 죽을 날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내용이다. 삼국유사에는 "왕이 병이 없을 때인데 '내가 모년 모달 모일이 되면 죽을 것이다. 그러니 나를 도리천 가운데 장사 지내라'고 했고, 과연 그달 그날에 이르러 왕이 죽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이 선덕왕지기삼사 설화의 마지막 부분에 느닷없이 "'별기'(別記)에는 이 선덕왕대에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고 한다"는 문장이 나온다.


이에 대해 서 강사는 "선덕왕지기삼사 설화는 문단 구조가 명확히 구분된다"며 "고려의 승려였던 일연은 선덕여왕의 세 가지 예언을 역사적 사실이나 특정 장소와 연결지어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세 번째 이야기에서 선덕여왕이 죽을 날짜는 '별기'의 첨성대와 맺어지고 있다"며 "일연은 첨성대에 대해 자세히 기록돼 있는 '별기'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이 '별기'는 현존하지 않아 첨성대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서 강사는 이어 "여왕이 죽을 날로 '모년 모달 모일'을 언급했다는 것은 그가 역일 체계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며 "역일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천문 활동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통시대의 역일에는 길흉을 예단하는 점성적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점으로 미뤄보면 "첨성대는 역일과 관련된 천문대이고, 그 형상은 필요에 의해 다양한 목적을 함의하고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또 "형태상 출입하기 불편하고 공간이 좁다는 것이 천문대가 아니라는 주장의 빌미는 될 수 없다"고 선을 긋고 나서 "선덕왕지기삼사에 있는 첨성대 기록을 선덕여왕의 예언과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취급했던 경향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주 첨성대. [연합뉴스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