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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 Times] 필요한 존재가 되지 못한 걱정이 두려움 만든다

바람아님 2016. 11. 16. 23:32
[중앙일보] 입력 2016.11.16 01:00
달라이 라마 티베트 종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
티베트 종교 지도자


요즘 지구촌 여기저기서 난리다. 어느 나라에서나 폭력이 난무한다. 독재정권의 억압 속에 살아가는 국민도 많다. 모든 종교가 사랑과 공감·관용을 설파하지만 동시에 종교의 이름으로 생각하기조차 힘든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그러나 빈곤과 기아가 감소했고, 아동 사망률과 문맹률 또한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줄어들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성과 소수자의 권리가 당연하게 보장된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인류는 진보했고 희망은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들에서 거대한 분노와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해 서구 사회 전역에서 정치적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꿈틀거리고 있다. 난민과 이민자들은 안전하고 부유한 서구 국가에서 살 기회를 달라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약속의 땅에 이미 발을 들인 사람들은 어쩐 일인지 절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미래에 대해 엄청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왜 그럴까?

사람이 어떤 경우에 잘살고 있다고 느끼는지 연구한 결과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노인은 자신이 남에게 유용한 존재라고 느낀 노인보다 일찍 숨질 가능성이 3배 가까이 높게 나왔다. 이는 인간에 대해 보다 폭넓은 진실을 보여준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건 이기적 자존감에 집착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에 대한 타인의 세속적 평가에 집착하는, 불건강한 자세도 아니다. 같은 인류를 돕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망이다. “남을 위해 불을 밝히면 나의 앞길 또한 밝아질 것”이란 13세기 어느 불교승의 가르침과 같다. 불교·기독교·이슬람교 등 세계의 주요 종교들은 한결같이 “남을 위한 봉사는 인간의 가장 고귀한 본성이요 행복한 삶의 비결”이라고 가르친다. 과학적 연구를 통해서도 같은 논리가 확인된다. 선행을 우선시하며 사는 미국인은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느낄 가능성이 2배 높았다. 독일에서도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하다고 주장할 가능성은 5배나 높았다. 이타심과 기쁨은 긴밀하게 얽혀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 다시 말해 인류와 하나가 될수록 우리의 기분은 더욱 좋아진다.


이는 부유한 나라에서 고통과 분노의 정도가 더 심한지 설명해 준다. 물질적 부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내가 남에게 필요한 존재”란 느낌이나 “내가 사회와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을 더 이상 갖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이다. 미국에선 일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일자리에서 완벽히 밀려난 남성들의 수가 50년 전에 비해 3배나 늘었다. 다른 선진국들도 마찬가지다. 그 고통은 경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이 사회에 불필요한 존재로 전락하는 경험은 그 사람의 정신에 큰 타격을 입힌다. 사회적 고립과 함께 감정적 고통을 느끼며 부정적 감정이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은 사회 시스템보다는 개인적 차원에서 문제를 봐야 한다.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매일 자신에게 “다른 사람이 내게 주는 선물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오늘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의식적으로 물어야 한다.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되는 것은 말로만 떠드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의식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노력과 헌신으로만 가능하다. 우리 모두는 이런 노력을 매일 해야 할 책임이 있다. 특히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사회적 통합을 확대해 모든 사람이 매사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써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각자 의미 있는 일을 할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따뜻한 사회다. 이런 사회가 되려면 아이들에게 윤리적 사고와 실용적 기술을 동시에 가르쳐 마음의 평안과 경제적 안정을 함께 이루게끔 해줘야 한다. 취약계층을 보호하되 복지정책이 이들을 비참한 의존적 삶에 가두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런 사회를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어떤 이념이나 정당만 갖고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혁신적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협동을 창출하는 요인은 정치적·종교적 신념의 일치가 아니다. 동력은 그보다 단순한 곳에서 나온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믿음, 즉 우리 모두가 세상을 더 낫고 더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지금의 사회적 문제는 기존에 구분했던 모든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우리의 대화와 우정 또한 모든 영역을 포괄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안정과 번영을 누렸던 서구 사회에서 분노와 절망이 들불처럼 번져 나가는 모습을 보며 혼란과 두려움을 느낀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육체적·물질적 안정에 만족하길 거부한 분노는 오히려 훌륭한 가치를 보여준다. 그건 바로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은 인간의 보편적 욕망이다. 이 아름다운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사회를 우리 함께 만들어 가자.


달라이 라마
티베트 종교 지도자

◆원문은 중앙일보 전재 계약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 3일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