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그림과 도시]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 우아하게 걷는 男女 사진인가 그림인가… 비 오는 날 파리의 거리

바람아님 2015. 2. 15. 02:45

(출처-조선일보 2015.02.14 전원경·'런던 미술관 산책' 저자)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1877년 작 ‘비 오는 날, 파리 거리’.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1877년 작 ‘비 오는 날, 파리 거리’.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소장
참으로 많은 사람이 찾는 도시이지만 파리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영어는 거의 통하지 않고, 오가는 이들은 관광객에게 무관심하며, 지하철역 안은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처럼 복잡하다. 
파리에 처음 간 스물한 살의 겨울날, 길을 잃고 어두워져 가는 거리를 한참 헤맸던 경험은 아직도 두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파리를 아름다운 도시로 떠올리는 것은 순전히 구스타브 카유보트(1848~1894)의 
'비 오는 날, 파리 거리'덕분이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거리는 파리 생 라자르 역 부근의 투린 가(Rue de Turin)와 더블린 광장(Place de Dublin)이 
만나는 지점이다. 널찍한 대로와 즐비한 건물들이 요즈음의 파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그림이 그려질 무렵 파리는 오스망 남작의 도시계획으로 한창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 오는 날, 파리 거리'가 유난히 사실적으로 보이는 것은 비단 말끔한 건물과 넓은 도로 때문만은 아니다. 
이 작품은 그림이라기보다는 도심의 거리를 찍은 스냅 사진이나 동영상의 정지 화면처럼 느껴진다. 
오른편의 남녀는 금방이라도 구둣발 소리를 또각또각 내면서 그림의 프레임 너머로 걸어가 버릴 것 같다. 
그들 옆을 막 스쳐가는 남자의 뒷모습은 절반만 그려져 있다. 물론 이런 우연성은 카유보트가 치밀하게 계산한 결과다. 
카유보트는 1830년대에 개발된 사진의 효과를 그림에 적극적으로 응용한 화가였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날마저도 이처럼 기품 있게 묘사될 수 있는, 참 예술적인 도시 파리. 그래서일까.
 내 기억 속의 파리는 늘 정갈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카유보트의 그림에 포착된 생 라자르 역 인근 거리처럼, 그림 속을 걸어가는 도도하고도 세련된 신사 숙녀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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