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137]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CCTV

바람아님 2015. 2. 14. 09:47

(출처-조선일보 2015.02.14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브루스 나우먼 작품 사진
브루스 나우먼, 복도 설치, 1970년, 
가벽과 비디오 카메라, 
비디오 모니터 설치. 로스앤젤레스, 
닉 와일더 갤러리 설치.
미국 미술가 브루스 나우먼(Bruce Nauman·74)은 1960년대 중반 비디오 카메라가 
상용화되면서 적극적으로 비디오를 작품에 활용하기 시작한 미술가 중 하나다. 
그는 특히 촬영과 동시에 상영이 가능한 폐쇄 회로 카메라, 즉 CCTV에 매료됐다. 
미술가들이 CCTV의 즉각적 피드백을 활용해 주로 촬영했던 것은 자기 자신이거나 
관람객 모습이었다. 
거울처럼 내 모습을 실시간으로 비춰주되, 고정할 수 없는 거울 이미지와 달리 
언제든 몇 번이든 반복 재생이 가능한 비디오는 '나'를 온전히 보고 싶은 이들에게 
크나큰 축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떤 미술사학자비디오 아트를 '나르시시즘의 미학'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우먼여전히 비디오에 찍힌 '나'는 기계를 매개로 한 이미지일 뿐, 
'실재의 나'와는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있다는 걸 작품을 통해 보여주었다. 
그는 전시실 안에 가벽을 설치해 길고 비좁은 복도를 만들었다. 
복도 입구 위에는 아래를 내려다보도록 CCTV 카메라를 설치했고, 
복도 안쪽 끝에는 모니터를 두었다. 
따라서 내가 복도 입구에 서면 모니터에는 내 등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모니터를 향해 걸음을 옮기면, 모니터 자체는 점점 더 크고 뚜렷하게 보이겠지만, 
그 안에 상영되는 내 모습은 카메라와 멀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작아지고 멀어진다.

나우먼어두운 복도 안에서 나는 내 행동에 반대되는 내 이미지 때문에 당황하고, 
보고자 하는 내 몸과 보이지 않는 내 몸 사이의 괴리에서 좌절하게 된다. 
이렇듯 '나'를 되돌아보게 했던 폐쇄 회로 카메라가 
지금은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치안 장비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