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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06] 회의론자(Skeptic)

바람아님 2015. 3. 3. 10:53

(출처-조선일보 2015.03.03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사진3월 3일 오늘은 이를테면 흉일(凶日)이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비행기 추락 사고만 줄잡아 네 차례나 일어났다. 
1953년 오늘 캐나다 퍼시픽항공의 비행기가 파키스탄 카라치공항에서 이륙하다 추락해 
승객 11명 전원이 사망한 사건에 이어, 1972년에는 미국 모호크항공의 비행기가 뉴욕 올버니공항에 
착륙을 시도하다 파손돼 17명이 숨졌다. 그로부터 2년 뒤 1974년에는 터키항공의 비행기가 프랑스 
파리 인근에 떨어지며 무려 346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1991년에는 유나이티드항공의 비행기가 
로키산맥의 고산 도시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추락해 25명이 사망했다.

이쯤 되면 3월 3일에 비행기 여행을 하기가 왠지 꺼림칙하리라. 
게다가 2014년 오늘 우리말로도 번역된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의 저자 셔윈 눌랜드
(Nuland) 예일대 의료윤리학 교수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면 우리 중 몇몇은 곧바로 미신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곤 하고많은 날 중에 왜 하필 3월 3일 비운이 겹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그럴듯한, 러나 전혀 근거 없는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걸 온 세상에 퍼뜨리기 시작한다. 예로부터 우리는 "삼세 번에 득한다"고 했다. 
"그런데 삼세 번이 겹치면 복에 겨워 오히려 재앙이 덮친다." 
이런, 이건 순전히 내가 지어낸 얘기인데 벌써 몇 사람이 빠져드네.

평생 이 같은 비과학의 맹점을 알리려 동분서주해온 과학 저술가 마이클 셔머(Shermer)는 그의 저서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에서 이는 우리 두뇌의 진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믿음 엔진(belief engine)'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반복된 관찰을 바탕으로 한 믿음 엔진 덕택에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됐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셔머가 출간하는 잡지 '스켑틱(Skeptic)'의 국문 창간호가 나왔다. 
미신 신봉이라면 둘째 가기 서러워할 우리나라에 이 잡지가 출간된다니 참으로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