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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자식 세대 먹거리 빼앗은 부모 세대 돈벌이

바람아님 2015. 3. 9. 10:28

(출처-조선일보 2015.03.09 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


	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 사진
중국 산둥성 칭다오(靑島)는 2000년대 초 한국 기업 도시나 다름없었다. 

한·중 수교 이후 중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 3만여 개 가운데 7000여 개가 이곳에 진출해 

'중국 내 구로공단·반월공단'으로 불렸다. 대구의 섬유 기업 80여 곳도 값싼 노동력을 찾아 

이곳으로 공장을 옮겼다. 중국 지방정부의 외자 유치 정책과 외국인 투자자를 최고 VIP로 접대하는 

공무원들의 노련함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하지만 칭다오에 진출한 대구 섬유 기업은 대부분 폐업하거나 매각하고 지금 남아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 

그 사이 대구와 칭다오의 지위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대구는 섬유산업 몰락으로 경제가 침체하고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타지로 떠나는 도시가 되었다. 반면 칭다오는 상하이·톈진 다음가는 

국제적 산업도시로 발돋움했다. 20년 전 대구 섬유공장을 찾아와 투자를 간청하던 칭다오 공무원들은 

이제 한국 기업인이 만나기조차 어려운 '대국(大國)의 나리'가 되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돌이켜 보면 한·중 수교 이후 한국 기업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으로 대거 공장을 옮긴 것 자체가 

한시적 돈벌이 모델에 지나지 않았다. 중국 기업이 더 좋은 섬유기계를 수입해 같은 제품을 더 싸게 만들자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사라졌다. 그 한시적 돈벌이를 위해 국내 제조업을 공동화시켰고 그 기간 중국 기업의 추격을 따돌릴 새로운 

먹거리 준비에도 소홀했다.

중국에서 밀려나는 한국 기업은 섬유·봉제·액세서리·염색 같은 노동집약형 업종에 그치지 않는다. 한때 중국 내 굴착기 

시장의 최강자였던 두산인프라코어는 몇 년 전부터 중국 현지 기업의 공세에 밀려 시장점유율이 크게 떨어졌다. 

삼성·LG의 가전제품은 전자상가 중심 코너에서 자꾸만 밀려난다. 한국 산업의 마지막 보루였던 핸드폰마저 지난해 중국 로컬 

업에 덜미를 잡혔다. 이 흐름을 반전(反轉)시키지 못하면 한국은 언젠가 중국 경제의 하도급 기지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문제는 한국 기업이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는 점이다

많은 기업이 여전히 미래 먹거리 준비를 경시하고 단기 수익에만 매달린다.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최근 중국의 온라인쇼핑이 폭발하자 타오바오(淘�)몰에 입점하기로 했다. 

중국 업체가 모방할 수 없는 독자적인 전자상거래와 서비스 모델 개발은 돈과 시간이 드는 일이니 포기하고, 성공한 중국식 

모델에 올라타 이익을 얻겠다는 발상이다. 만약 타오바오가 같은 제품을 더 싸게 공급하면 한국 기업은 끝이다.

여행업계도 마찬가지다. 

한국 여행사들은 일본보다 훨씬 낮은 단가, 심지어 항공료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중국인을 받아 질 낮은 여행을 시키고 

쇼핑몰에서 억지로 이익을 뽑아낸다. 중국인들은 "일본엔 또 가고 싶지만 한국은 다신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모두가 죽는 길을 여행업계 전체가 달려가고 있고, 정부도 수수방관이다.

한국 기업은 그동안 중국과의 경협에서 많은 이익을 얻었다. 한·중 FTA가 발효되면 중국 시장은 더 큰 기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주체들이 미래 먹거리에 대한 전략 없이 당장의 이익만 중시하는 발상을 바꾸지 않는다면 

부모 세대의 선택이 자식 세대의 먹거리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대구 젊은이들이 섬유산업 몰락으로 고통을 겪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