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박두식 칼럼] 對美 한·일 외교전의 승패가 갈리기 시작했다

바람아님 2015. 3. 11. 09:39

(출처-조선일보 2015.03.11 박두식 논설위원)

지난 1년간 워싱턴 무대 삼아 日은 천문학적 돈 쓰며 로비전… 아베 美 의회 연설까지 추진
한국은 日 재단 한 곳 예산보다 적은 돈 들고 전략도 없이 맞서… 미국 곳곳 일본 국화 香 짙어져


	박두식 논설위원
박두식 논설위원
"워싱턴에 국화(菊花) 향이 짙어졌다." 
얼마 전 미국 워싱턴을 다녀온 한 학자에게 한·일(韓·日) 과거사 문제를 보는 미국 조야(朝野)의 분위기를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국화(菊花)는 일본의 나라꽃이다. 
미국 내 친일(親日) 내지는 지일(知日) 인사들을 '국화클럽' 또는 '국화파'라고 부른다. 
국화 향이 강해졌다는 것은 일본의 존재감이 커졌다는 뜻이다.

한국과 일본은 2014년 한 해 워싱턴에서 양국 간 과거사 문제를 놓고 치열한 외교전(戰)을 펼쳤다. 
경쟁적으로 정부와 국회 관계자, 민간 전문가들을 워싱턴에 보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움직일 만한 힘을 가진 사실상 유일한 나라이다. 
이런 미국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돌려놓으려는 전투의 주무대가 워싱턴이었다.

미국은 지금껏 엄정 중립을 지켜왔다. 
겉으로 봐서는 승부의 추(錘)가 한·일 어느 한쪽으로 쉽게 기울 것 같지는 않다. 
미국 정부뿐 아니라 학계와 싱크탱크 관계자들까지도 중립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우리 내부적으로는 워싱턴 전투의 최종 승자는 당연히 한국일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분위기다. 
일본은 미국과 전쟁을 했던 나라이고, 한국은 일본의 침략과 수탈에 시달려온 피해자다. 
이 역사적 사실을 다 알고 있을 미국이 피해자 한국을 제치고 가해자 일본의 손을 들어줄 리 없다는 것이다. 
이게 지난 1년간 이 나라를 지배해온 국민 정서였다.

그러나 워싱턴의 상황은 우리의 기대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난 1년여 일본은 그간 할 수 없었던 금기(禁忌)들을 하나둘 허물어가면서 입지를 넓혀 왔다. 
대표적인 게 미국 연방의회에 '일본 코커스(caucus·의원 모임)'가 만들어진 일이다. 
일본은 줄곧 미국 의회에 친일 의원 모임을 두길 원했지만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과거사 때문에 쉽지 않았다. 
2003년과 2007년 미국 하원과 상원에서 차례로 '코리아 코커스'가 탄생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러나 '일본 코커스'는 발족 1년 만에 68명이 이름을 올렸다. 
'한국 코커스'에 속한 하원 의원은 63명이다.

일본의 워싱턴 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오바마 정부에서 국가정보국(DNI) 국장을 지낸 데니스 블레어가 작년 5월 사사카와평화재단의 워싱턴 대표로 취임했다. 
DNI 국장은 미국 정부 내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고 대통령에게 가는 모든 정보를 통제하는 책임자다. 
그런 인물이 일본의 로비스트로 변신한 것이다. 
그는 올해 초 한국이 일본의 과거사를 문제 삼는 것에 대해 
"일본이 과거에 끔찍한 일을 저질렀지만 한국도 베트남전쟁 당시 아주 무자비했다"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 재단을 설립한 사사카와 료이치(笹川良一)는 A급 전범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사업가 출신이다. 
사사카와재단의 미국 관련 예산만 78억원에 이른다. 일본 외무성은 국가 홍보 등에 쓰일 공공 외교에 전년보다 3배 늘어난 
520억엔(약 4700억원)을 책정했다. 한국의 대미(對美) 공공외교 예산은 10억원에 불과하다. 
사사카와재단의 7분의 1 수준이다. 미국은 흔히 '돈이 말하는(money talks) 나라'이다. 
미국 의회 보좌관 중 대표적인 아시아통(通)으로 꼽히는 인물들이 최근 잇달아 사사카와재단 등으로 자리를 옮긴 이유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최근 테러를 당한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도 바로 의회 보좌관 출신이다.

일본은 아베 총리가 미국을 방문하는 4월 말 이전에 TPP(환태평양 전략경제동반자협정)와 미·일 안보 가이드라인 
개정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입장이다. 경제와 안보 두 분야에서 미·일 관계를 한층 강화시키는 협정들이다. 
아베 정권은 과거사 도발을 하면서도 미국이 원하는 것은 철저히 들어주는 방식으로 미국의 불만을 잠재워 왔다. 
아베 총리가 추진 중인 미국 의회 연설도 성사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미국 의회에서 연설한 첫 일본 총리로 
기록된다. 한국 입장에서 볼 때 과거사 문제에서 가장 퇴행적이고 도발을 일삼아 온 아베 총리가 일본의 새 역사를 쓰는 
주인공이 되는 셈이다.

반면 한국의 대미(對美) 외교는 그간 분주하기는 했지만 제자리걸음을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 서울을 찾은 미국 싱크탱크 관계자는 "워싱턴에 온 한국 인사들은 하나같이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을 비난하면서 
미국을 가르치려 드는 듯한 똑같은 말만 반복해 왔다"며 "지금은 한국에 대한 피로감이 커진 상태"라고 전했다. 
최근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을 두둔하는 듯했던 미국 국무 차관의 발언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여기에다 한국에는 사사카와재단처럼 이 나라를 위해 거액을 내놓는 기업도 없다. 
정(政)·관(官)·민(民) 사이의 협업도 대부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가적 차원의 어떤 전략이나 계획도 없이 제각각 워싱턴 전투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한·일 외교전의 승패가 어디로 기울지는 불 보듯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