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7년 만에 1박2일 일정으로 방문한 메르켈 독일 총리의 발언을 다룬 요미우리 신문(왼쪽)과 아사히신문(오른쪽)의 1면. 과거사 관련 보도 입장이 180도 달랐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오른쪽)가 10일 오전 오카다 가쓰야 일본 민주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군 위안부 문제의 확실한 해결”을 요구했다. [사진 지지통신]
일본을 방문 중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일본 야당 대표에게 작심하고 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메르켈 총리는 방일 마지막 날인 10일 제1야당인 민주당의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과 일본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 군 위안부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고 지지통신이 보도했다.
메르켈은 또 “종전 70주년을 맞이하지만 중국·한국과 화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오카다 대표의 발언에 “과거를 완전히 정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 새로운 시각이 나오기 때문에 항상 과거를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메르켈의 ‘군 위안부 문제 해결’ 발언은 전날의 ‘역사 직시’ 발언과 함께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군 위안부 문제는 법적으로 종결됐다”는 아베 신조 정권의 태도에 변화를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일본 언론의 메르켈 총리의 방문 보도는 신문사 입장에 따라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보였다. 10일자 요미우리(讀賣)신문 1면 톱 기사에는 ‘과거’ ‘역사’란 글자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3면 메인 기사도 마찬가지다. 1면 제목은 ‘일·독 정기 협의하는 데 일치, 우크라이나 평화 둘러싸고’, 3면 제목은 ‘적극적 평화주의에 이해’였다. 기사도 “(아베 정권의 적극적 평화주의에 기반한 안전보장법 제정에) 독일이 다시 지지 의사를 표명한 것은 큰 원군이 된다” 등 양국 정상 간에 나눈 호의적 내용뿐이었다. 6개 면에 걸친 관련 기사 중 메르켈 총리의 ‘과거’ 관련 언급이 나온 건 3면 보조기사 끝부분의 “메르켈은 ‘나치가 행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라고 하는 우리가 떠안아야 하는 죄에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 것인지, 즉 과거사 정리가 화해의 전제가 된다’고 말했지만 (역사 문제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피했다”는 문장이 유일했다.
우익 역사관을 지닌 산케이(産經)신문도 “그동안 독일 외교가 중국에 치우쳐 있었으나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일본과의 거리를 좁혔다”며 ‘일·독 실리적 접근’이란 제목을 달았다. 역사 관련 발언은 한 문장을 붙이면서 “한국·중국과 대립하는 일본을 빗대어 빈정댔다”는 표현을 썼다.
7개 면을 할애한 아사히(朝日)신문은 180도 달랐다. 1면 톱 제목이 ‘과거의 총괄, 화해의 전제’ ‘독 총리, 역사인식 관련 회견에서 언급’이었다. 메르켈 총리의 발언을 상세히 전한 아사히는 1면 분석기사에서 “메르켈 총리가 역사 인식과 관련해 여기까지 언급할 줄은 사전에 예상을 못했다. 굳이 깊숙이 파고든 것은 한·중·일의 긴장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독일에도 간과할 수 없는 현실적 위험이 됐다는 걸 상징한다”고 전했다.
진보 성향의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역사 발언을 전하면서도 아사히와는 달리 “전후 70년 관련 논의는 적었고 ‘한·중·일’ 문제에 깊숙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