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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영혼 하나만 가져와라, 내가 '메마른 심장' 적셔줄 테니"

바람아님 2015. 6. 21. 22:57

(출처-조선일보 2015.06.20 어수웅 기자)

한양대 국어교육과 정재찬 교수
'눈물…' 등 12개 주제로 시 묶어 광고 등 대중문화 언어로 해설
工大生도 울린 '…시 읽기' 수업, 한양대 最高 강의로 평가 받아


	시를 잊은 그대에게-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 책 사진

시를 잊은 그대에게-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휴머니스트 | 300쪽 | 1만5000원


이 책의 부제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는 최소한의 메타포다. 

'메마른 심장'이라 불리는 공대생(工大生)을 울릴 수 있다면, 누구에게라도 감동적인 시 읽기의 

경험을 선물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한양대 국어교육과 정재찬〈사진〉 교수가 이 거창한 야심을 실천에 옮긴 

에세이다. 이 대학 최고의 강의 평가를 받았다는 그의 수업 '문화 혼융의 시 읽기'가 그 씨앗. 

정 교수는 강의 첫날 "아무것도 챙겨올 생각 하지 말고 영혼만 가져와라. 

그럼 내가 한 시간 동안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한 학기가 지난 뒤 강의 마지막 날, '메마른 심장'들은 기립박수를 쳤다고 했다.

국민 대부분이 제목을 들어봤을 46편의 시가 이 책에 등장한다. 

하지만 46편의 시에 46편의 해설을 붙이는 평범한 접근은 사양한다. 

'가난한 갈대의 사랑 노래' '떠나가는 것에 대하여' '눈물은 왜 짠가' 등의 12개 주제 아래 시를 묶고, 

문학의 언어를 넘어 가수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나 그 시절의 오란씨 광고 등 

분방한 대중문화의 언어로 시 읽기의 새로운 쾌락을 즐긴다.


	아등바등 살아도 힘든 판에 무슨 시 타령이냐고? 시라고는 당최 가까이해본 적 없는 당신도 느끼는 순간이 올 것이다. 내 삶의 헛헛함은 어떻게 풀어야 하느냐고. 여기 그 해답 중 하나가 있다. 시(詩). 사진은 여의도의 벚꽃 낙화.
아등바등 살아도 힘든 판에 무슨 시 타령이냐고? 시라고는 당최 가까이해본 적 없는 당신도 느끼는 순간이 올 것이다. 내 삶의 헛헛함은 어떻게 풀어야 하느냐고. 여기 그 해답 중 하나가 있다. 시(詩). 사진은 여의도의 벚꽃 낙화. /오종찬 기자
가령 '별이 빛나던 밤에'라는 주제로 묶인 시들이 있다. 방정환의 '형제별', 김광섭의 '저녁에',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이성선의 '사랑하는 별 하나' 등의 시편과,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 윤형주가 부른 오란씨 광고, 김환기의 그림, 
영화 '라디오 스타'가 종횡무진으로 활약한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김광섭 '저녁에' 전문)

1969년 김광섭이 '저녁에'를 발표한 후, 이 시는 그림으로 또 유행가로 확대 재생산됐다. 
1970년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 대상을 받은 김환기(1913~1974)의 작품 제목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였고, 
10년 뒤에는 듀엣 유심초가 애틋하게 불렀다. 
정 교수는 감탄한다. "별과 내가 서로 마주 본다는 것, 이것은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가."

우리 은하계에만 천억 개의 별이 있고, 우주에는 그런 은하가 또 천억 개 있다는데. 
그중 하나의 별이 수십억 인구 가운데 하나인 나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이다. 
화제는 이제 유심초에서 윤형주로 건너간다.


	정재찬 교수 사진
정재찬 교수

'별이 지면 꿈도 지고 슬픔만 남아요/ 창가에 지는 별들의 미소 잊을 수가 없어요//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윤형주 작사·번안곡, '두 개의 작은 별')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 드려요 아름다운 날들이여 사랑스런 눈동자여!"

한때를 풍미했던 오란씨를 소환하며, 정 교수는 그렇게 "아름다운 날들에 대한 그리움"을 읽는다.

'눈물은 왜 짠가' 편에서는 함민복의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와 '눈물은 왜 짠가', 

그리고 정호승의 '슬픔이 기쁨에게'와 정지원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인용한다. 

"남이 울면 따라 우는 것이 공명이다. 

남의 고통이 갖는 진동수에 내가 가까이하면 할수록 커지는 것이 공명인 것이다. 

슬퍼할 줄 알면 희망이 있다"라며 공명(共鳴) 가능한 언어로 깨달음을 얻는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중에서)

할머니의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는, 간장종지 그릇보다도 속좁은 너에게 저주하듯 선언하는 것이다. 

슬픔을 주겠다고 말이다.

정재찬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그렇게 추억과 대중문화와 역사와 철학을 자연스럽게 가로지르며, 

새로운 성찰의 길로 이끈다. 내려다보는 계몽의 시선이 아니라,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저잣거리의 언어로서.

시 에세이나 해설서가 넘쳐나는 현실에서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새롭게 추천하는 까닭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이 시의 해설로만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의술, 법률, 사업, 기술이 삶의 수단이라면,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삶의 목적은 아름다움과 낭만, 사랑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했던 이 말을 다시 옮기는 이유는, 

이 책이 '메마른 심장'들의 피톨을 다시 뛰게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점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이 뜨거운 여행에 당신도 동참해 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