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 600년을 넘긴 느티나무 뒤편으로 2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전남 장흥군 안양면 월암리. 마을 앞에 광활하게 펼쳐진 들판이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출렁인다. 수확이 한창인 계절이지만 들녘은 평온하다. 경쾌한 경운기 소리도 농민들의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자전거에 농기구를 실은 할아버지가 느리게 페달을 밟으며 들판을 살피고 있다
외로운 콤바인위성전씨가 전남 장흥군 안양면 월암리의 드넓은 들판에서 콤바인을 이용해 혼자 가을걷이를 하고 있다.
벼 이삭에 내린 이슬이 흔적을 지울 때쯤 들판 저 멀리서 콤바인 한 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모자를 눌러 쓰고 선글라스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한 농부가 능숙한 운전술로 고개 숙인 벼를 논바닥에 쓰러뜨리며 탈곡을 한다. 이어 탈곡한 벼를 곡물 수송용으로 개조한 트럭 적재함에 쏟아붓는다. 적재함이 가득 차면 트럭을 몰아 농가에 설치된 건조기로 벼를 옮긴 후 다시 들판으로 향한다.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이 일을 반복하며 하루 20~30마지기(약 4000~6000평, 1만3223~1만9834㎡) 논의 벼를 수확한다. 10월에는 휴일도 없다.
위성전씨가 들판 일을 나가기 전 트럭 백미러를 보며 얼굴에 선크림을 바르고 있다. |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 22살 때부터 20년 넘게 농사를 짓고 있는 ‘청년 농부’ 위성전씨(45). 마을 주민 대다수가 70대 노인인 탓에 500여 마지기(약 10만평, 33만578㎡)에 달하는 드넓은 들판의 추수는 고스란히 그의 몫이다. 나이 든 농민들이 벼베기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육중한 기계를 다룰 줄 아는 그가 품삯을 받고 가을걷이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500여 마지기 중 위씨 논은 30여 마지기에 불과하다.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 임차한 논이 100여 마지기다.
“그래도 우리 마을은 사정이 낫지라, 내 또래 농부가 없는 마을도 많당께. 가끔은 다른 마을에도 콤바인 끌고 갔다오제.”
또 고장 났네 위성전씨가 벼베기를 하다 콤바인이 고장 나자 담배를 피우며 한숨짓고 있다. |
모심기철도 상황은 비슷해서 그는 봄, 가을에 한 차례씩 품삯으로만 두툼한 현금을 손에 쥔다. 하지만 콤바인이나 이앙기 등 농기계들이 워낙 고가여서 구입비와 수리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게 그리 많지 않다.
위성전씨가 콤바인으로 작업할 수 없는 논 가장자리 벼를 낫으로 베서 옮기고 있다. |
위씨는 군 제대 후 상황버섯과 표고버섯 등 특용작물 재배로 농사일을 시작했다. 쌀농사는 부차적이었다. 젊은 나이에 꽤 큰돈을 만졌다. 그게 문제였다. 너무 쉽게 돈을 번 탓에 시설투자를 늘리고 축산업에까지 손을 댔다가 파산했다. 남은 건 수억원의 빚더미였다. 2006년부터 개인회생 절차를 밟아 3년 전에야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났다. 지금은 소액이지만 영농자금을 지원받아 쌀 위주로 농사를 짓고 있다.
“그때는 산판(벌목) 일도 다니고, 겨울엔 공사장에서 일하고 그랬제. 지나본께 쌀농사가 있어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갑소잉~~.”
점심식사는 주로 마을 주민과 함께 한다. |
말동무는 노인들뿐. 따가운 가을 햇볕 아래서 홀로 일하다 보면 가끔 외롭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노동력을 잃고 야위어가는 농촌을 외면할 수도 없다. 운명 같다.
가끔 이웃 마을 농민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휴식이 꿀맛 같다. |
위씨의 하루의 시작은 변함이 없다. 아침 식사를 마치면 등교하는 고등학생 아들과 중학교 교사인 아내를 배웅한다. 그리고 트럭 백미러를 보며 얼굴에 선크림을 정성스럽게 바른 뒤 야구모자와 선글라스, 장갑을 챙겨 콤바인이 기다리는 들판으로 달려간다. 그는 천생 농부다.
<장흥 | 사진·글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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