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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의 자유인] "古典은 후대의 재발견 기다리는 '種子 보관소'"

바람아님 2016. 2. 10. 10:20

(출처-조선일보 2016.02.10 김성현 기자)

[서양고전학자 강대진]

국내 출간된 라틴고전 번역 오류, 實名으로 비판한 '저격수'
"고전이 첨단·실용의 반의어? 자기계발서 뺨치는 처세술 담겨"

서양고전학자 강대진(55) 홍익대 겸임교수와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우선 그는 휴대전화를 가져본 적이 없다. '사람이 더러 연락이 안 될 때도 있어야 한다'는 지론 때문이다. 이메일로 '접촉'한 후 몇 차례 집에 전화를 건 뒤에야 성사됐다. 강 교수는 운전면허도, 집에 TV도 없다. 휴대전화까지 포함, '삼무(三無) 박사'가 그의 별명이다. 강 교수는 "가끔씩 동료들에게 '허세(虛勢)'라는 비판도 받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다"면서 "술자리를 피할 수 있는 등 장점이 많다"고 웃었다.

국내 번역계에서 한동안 그는 '저격수'로 불렸다. 2004년 첫 책이었던 '잔혹한 책읽기'(작은이야기)를 통해 국내 출간된 신화와 역사·예술서 12편의 번역을 실명(實名) 비판한 뒤부터였다. 이 책은 "먼저 이 책에 인용된 라틴어 문장이 모두 잘못 번역됐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거나 "이 책의 번역은 내게 큰 고통을 주었다" 같은 정면 비판으로 가득했다. 이윤기 같은 유명 번역가들도 그의 과녁을 피하진 못했다. 강 교수는 "한번 잘못 번역된 용어들이 몇 번이고 반복되는 실수를 피하기 위한 '교정(矯正)'과 '교육'의 바람에서 책을 펴냈는데, 주변에서 '서운하다'는 반응을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현재 '잔혹한 책읽기2'를 속편으로 준비 중이다.

서양고전학자 강대진씨는 전화로 “낮 12시 반,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10분 일찍 도착해서 휴대전화도 없는 상대를 기다리고 있으니, 시간을 과거로 돌린 것처럼 기분이 묘했다.
서양고전학자 강대진씨는 전화로 “낮 12시 반,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10분 일찍 도착해서 휴대전화도 없는 상대를 기다리고 있으니, 
시간을 과거로 돌린 것처럼 기분이 묘했다. /고운호 객원기자

남을 비판하는 만큼 자신의 작업도 옹골차게 하는 '선수'가 적다지만, 강 교수는 보기 드문 예외에 속한다. '오이디푸스 왕'(소포클레스)과 '아폴로도로스 신화집'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루크레티우스) '신들의 본성에 관하여'(키케로) 같은 고전들이 그의 손을 거쳐 국내에 소개됐다. 천병희(77) 단국대 명예교수와 더불어 그리스·로마 고전 번역의 대표 주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세네카의 비극과 플라우투스·테렌티우스의 희극, 카툴루스의 연애시 등 그가 번역을 꿈꾸는 '버킷 리스트(bucket list·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에는 끝이 보이질 않았다. 그는 "미국 하버드 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서양 고전 총서와 비교하면 한국은 아직 반(半)의 반도 소개되질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미국의 종말'을 이야기할 때마다 번역된 고전의 양을 근거로 나는 '미국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고 답한다"고 말했다. "번역된 고전이 많다는 건 그만큼 독서의 저변이 탄탄하고 사고의 폭이 넓다는 걸 뜻한다"는 것이다.

그는 1981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들어간 과학도였다. 하지만 군에 다녀온 뒤에 1985년 같은 대 철학과에 재입학했다. 독일어·프랑스어는 학교 수업 시간에, 라틴어와 그리스어는 학과 세미나에서 선배들에게 배웠다. 철학과를 졸업한 뒤 그는 서울대 서양고전학 협동과정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플라톤의 '향연' 연구가 석사 논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연구가 박사 논문 주제였다. 강 교수는 "과학을 하기에는 수학 실력이 모자랐고, 철학을 하기엔 추상적 사고가 부족했다. 처음부터 서사시와 비극이 지니고 있는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대중의 관심사가 하루아침에 확산됐다가 증발하는 SNS(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시대에 고전을 읽는 행위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강 교수는 낙관적이었다. "고전을 실용이나 첨단의 반의어로 보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고전은 후대의 재조명을 끝없이 기다리는 아이디어 창고이자 종자 보관소와도 같다"는 것이다. 그는 '호메로스의 라이벌'로 꼽히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의 '노동과 나날'을 예로 들었다. "'형제간에도 보증을 세워라'든지 '멀리 있는 친척보다는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책의 내용은 오늘날의 자기계발서나 처세술을 뺨칠 정도예요. 당시에도 세상을 사는 지혜는 절실했던 것이지요." 그는 "2500여년이 지났지만 인류의 고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가치를 지닌 작품'을 고전이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강대진씨가 권하는 '고전 읽기 노하우'] 


①해설서보다는 원전(原典)을 먼저 펼쳐라
막혔을 때 해설서를 보면 막혔던 이유를 알게 된다.

②은행·지하철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마라
쉬는 시간이나 줄을 서 있는 동안에도 조금씩 읽는 편이 좋다.

③가족이나 동료에게 줄거리를 들려줘라
자신의 힘으로 책을 요약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④고전을 읽고있단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려라
독서 습관을 유지하고 주변에 전파 효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