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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장훈 묻고 송호근 답하다

바람아님 2016. 2. 12. 15:02

[직격 인터뷰] 장훈 묻고 송호근 답하다


“나는 한 시민으로 낙제점이다. 이웃과 공존하는 대신 내 고집과 집념만 앞세우며 살았다.” 
‘시민’이 지성계의 화두로 떠오른 2015년 벽두에 서울대 송호근 교수는 이렇게 고백했다. 
그가 낸 신저 『나는 시민인가』는 스스로의 부족한 시민성에 대한 절절한 성찰이다. 
그를 포함한 우리의 장년세대는 
성공과 출세의 논리만을 몸에 익히며 살아왔지 사익과 공익의 조화, 공동체의 윤리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요즘 춘천 외곽의 농촌에서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살며 이 같은 반성을 체화하고 있다. 
설을 나흘 앞둔 지난달 14일 송 교수를 찾아 춘천으로 떠났다.


시민 의식 결핍이 우리 근본 문제 … 민주주의에 지름길 없어


장훈 교수(이하 장)=최근 펴낸 책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나는 시민인가』로부터 얘기를 시작하자. 
저자 스스로의 삶에 대한 반성이 진하게 반영돼 있더라.

 송호근 교수(이하 송)=지난해 세월호 사태를 겪으면서 고민이 시작됐다. 
어떤 형태로든 우리 사회 공공성의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지식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개인적인 고민이 많았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 사태를 어떻게 파악하고, 속죄해야 할까 숙고했고 나 스스로 얼마나 공존을 고민하며 살아왔는지 
고백하고 싶었다. 결국은 내가 정말 시민인가? 아직은 그렇게 성숙한 시민은 아닌 것 같고 시민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 
나름 사회에 공헌하며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런 심정이 그 책의 출발이다.

 장=저자 본인의 개인적 성찰이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 시민들에게 공감과 제안을 요청하는 것으로 읽혔다. 
반응은 어땠나?

 송=중앙일보에 책 서평이 나간 뒤 독자들로부터 다양한 e메일을 받았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성공한 나라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자화상에는 심각한 결핍이 있기도 하다. 
달리 말해 우리 시대 한국 사회에는 돌파해야 할 장벽이 많은데, 이에 대한 합의가 없기 때문이다. 왜 합의가 안 되느냐? 
따지고 들어가면 가장 결핍된 것은 시민의식이다. 
우리 시민들이 국가에 자꾸 요구하는 국가주의적 의존성이 극대화된 상태다. 
이 상태에선 우리가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도 아마 금방 무너질 것이다. 
자발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그 얘기를 들으니 『나는 시민인가』에서 미진했던 초점이 분명해진다. 
시민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공동의 이익을 위해 생각하고 토론하는 시민이 될 수 있느냐가 궁금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얘기로 보면 우리 사회에 결핍된 ‘공유코드’, 즉 복지나 경제민주화 등에 대한 공동의 입장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공공적 시민이 등장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송=구체적인 방안에 앞서 현실부터 돌아보자. 우리들의 평균적인 삶에 공동체가 과연 작동하느냐? 나는 회의적이다. 
몇 해 전 서울 서초동 우면산에 산사태가 났을 때다. 
아파트단지 내에 토사가 밀려 들어오는데도 주민들 중 누구도 나와 보지 않았다. 
다들 그냥 직장에 가 버리고, 결국 군인들이 와서 토사를 치웠다. 주민들은 그 작업이 끝날 때까지 그저 기다렸다. 
그러곤 국가에 손해배상을 했다.(웃음) 
다수의 사람이 개입된 공동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직체가 우리 사회에서 작동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우리에겐 민주주의의 미시적 기초인 공동체는 없다’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에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빠른 경제성장이나 경제 회복이 아니고 시민들이 서로 공존해 
어떻게 살 것이냐는 문제의식을 갖추는 것이다. 
우선은 우리 마을, 우리 아파트단지에서 민주적 생활양식을 갖추는 데 십시일반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민정치교육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모든 기업에서 직장인들이 사회적 이슈를 토론함으로써 식견을 갖출 기회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지금은 직업교육보다 시민교육이 필요할 때라고 본다. 
예컨대 ‘민주시민교육촉진법’이나 ‘민주시민교육진흥법’을 만들어 일주일 정도라도 모든 성인이 시민교육에 참여하도록 
법제화하면 어떨까 싶다.

 장=독일식 시민정치교육을 연상케 하는 제안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와 제도정치권이 과연 시민정치교육의 방향과 원칙에 합의할 수 있을까?

 송=거기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시민이라고 하는 말 자체가 진보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어 정치권에서 시민정치교육 프로그램을 통과시키는 데 
엄청난 장벽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또 하나는 만에 하나 통과돼도 그 프로그램에 정치적 성향이 개입되면 저항이 많을 것이란 점이다. 
독일의 ‘보이스텐스’ 합의를 참고할 만하다. 
독일이 1956년에 정치교육원법을 만들면서 세운 첫째 원칙이 “절대로 정치적인 이야기는 하지 말 것!”이었다. 
즉 편향적으로 어느 한편을 들지 말자는 게 제일 원칙이었던 거다. 
둘째는 논쟁 중인 사항은 논쟁으로만 소개하라는 것이고, 
셋째는 전문가는 초대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토론은 토론으로 그치자는 얘기다. 예컨대 어느 기관에서 핵발전소 문제를 논의한다면 그걸 토론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이를 반대한다는 의견만을 내는 건 허용되지 않았다. 
우리도 독일처럼 이런 원칙들을 전제조건으로 출발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장=미시적이고 풀뿌리적인 이야기다. 그만큼 실현되기엔 오래 걸리지 않을까?

 송=민주주의의 미시적 기초를 닦는 데 지름길이 있을까?

 장=화제를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로 옮겨 보자.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시대의 화두인데, 이 시점에서 어떻게 평가하나.

 송=굉장히 중요한 쟁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복지논쟁은 중요한 사회과학적 논리를 결여하고 있다. 
복지의 본래 의미와 목적은 ‘고용창출’에 있다. 우리는 이런 등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정부의 정책 입안자들도 복지를 일자리 창출과 연결시키지 못하고 그저 세금을 어떻게 할 것인지만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한쪽에서는 ‘무상복지’를 앞세우며 “다 나눠 주겠다”고 하고, 한쪽에서는 “그럴 돈이 어디 있느냐”고 반박하는 거다. 
이런 오해와 왜곡은 복지를 확대하는 전제조건이 바로 임금 동결에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어서 생긴다. 
복지는 달리 표현하면 ‘사회적 임금(social wage)’ 아닌가. 사회적 임금을 받으려면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민간 부문에서의 
시장 임금은 동결해야 하고, 시민들도 이를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장=‘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이란 맥락에서 기업의 역할을 주목하라는 이야기 같다.

 송=나는 경제민주화를 복지와 분리할 수 없다고 본다.

 장=분리할 수 없다?

 송=그렇다. 양자는 분리된 게 아니다. 
‘복지=일자리 창출=경제민주화’다.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이분법 사회를 넘어서』라는 책에서도 주장했듯이 한국의 복지담론에는 일자리 창출이 빠져 있다. 
복지는 일자리 창출이고, 일자리 창출은 곧 경제민주화의 목표다. 
그러므로 복지와 경제민주화는 ‘일자리 정치’를 고리로 연결되는 선순환 관계다. 
이런 점을 얘기하지 않으면서 그냥 ‘증세냐 아니냐’로 논쟁이 귀결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경제민주화재벌과 중소기업과의 관계 개선이나 재벌 총수의 도덕성 회복, 독과점 해결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의 핵심 요체는 일자리 정치, 다시 말해 일자리 창출(기업), 일자리 지키기(정부), 
일자리 나누기(노조)가 제대로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임금협약(자제), 노동시간 양보, 고용안정 등이 노사 간에 약속돼야 한다.

 장=『나는 시민인가』를 읽으면서 당신이 기존에 출간한 『인민의 탄생』 『시민의 탄생』의 연장선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었다. 
첨단 사회과학 이론을 전공하다 역사로 건너간 배경을 듣고 싶다.

 송=즐거운 질문이다. 내가 책을 한 20권쯤 내니 50대 중반이 됐다. 한마디로 허무하더라. 
스스로의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학문적 정체성의 혼란이기도 했고 학문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 혼란이기도 했다. 
왜 글을 쓰는가? 그런 고민이 결국 나를 있게 만든 시원으로서의 근대를 돌아보는 것으로 연결되더라. 
나와 사회과학의 동시적인 출발점으로서 근대를 묻게 된 거다. 
근대의 중심에서 글을 아는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풍경은 과연 어땠을까? 그걸 역사로 쓰면 좋지 않을까? 
그래서 근대사의 숲을 헤매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흥미로운 풍경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조선시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간 거다.

 장=사회학자로서 근대사의 세계로 들어가니 무엇이 제일 어렵던가?

 송=잘 아시는 대로 역사 연구는 사학계에선 대부분 미시적인 연구다. 
비유하자면 수천 명의 연구자가 각자 토끼굴을 뚫고 들어가 모두 나름의 뭔가를 잡아 가지고 나왔지만 
그게 나 같은 사회과학자의 성에는 안 찼던 것이다. 
그래서 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뭔가 뚜렷한 명제를 만들어 내자고 욕심을 부렸다. 
다시 말해 역사학자들이 발굴한 무수히 많은 역사적 사실을 벽돌로 삼아 근대 한국사회 인민의 진화 과정을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재건축한 게 바로 『인민의 탄생』 『시민의 탄생』이다. 
힘들었던 건 내가 시민의 탄생을 설명하기 위해 가져다 쓴 역사학자들의 기초적 사실들이 모두 상상이고 환상이라고 
비판받았을 때다. 이러다 송두리째 무너질 수도 있구나 하는 두려움이 없지 않았다.

 장=사회과학 이론으로부터 우리 역사로 넘어가는 것은 당신의 지적 편력을 넘어 우리 사회과학이 가야 할 방향이라고 
믿는다. 아쉬운 건 『인민의 탄생』이나 『시민의 탄생』 등은 대단한 공력이 들어간 작품인데, 후속 논쟁이 활발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듯한 점이다. 왜 그럴까?

 송=『인민의 탄생』과 『시민의 탄생』처럼 전통적인 학계의 문법에서 벗어나는 시도를 하면 두 가지 장벽이 가로막게 된다. 
하나는 기성 학계로부터 보이지 않는 처벌이 내려진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전통적인 문법에서 벗어나면 길을 잃어버리고 학자로서 정체성을 놓친다는 위험이 따른다는 것이다. 
이 두 장벽 때문에 기성 학계가 미시적 지식을 생산하는 선에 그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잘했다는 것이 아니다. 
이러저러한 형태의 실험적인 전략이 많이 나와 줬으면 좋겠다는 게 내 바람이다. 
하지만 우리 대학들은 지난 20년 동안 미시적 지식을 생산하는 소매상으로 전락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 한계를 어떻게 돌파할 것이냐가 우리 대학사회의 큰 숙제가 아닐까 한다.

 장=현실에 적합한 지식을 요구하는 추세는 강해지는데 대학은 위축되고 있다. 
시민 민주주의는 허약한데 민주주의의 분열은 점점 노골화되고 있다.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송=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여러 가지 절망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기질 덕분인지는 몰라도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려 노력한다. 그렇다고 조건 없는 낙관은 아니다. 
그럼, 조건은 뭐냐? 우리가 그동안 세계에서 유례없는 성공을 거둬 왔기 때문에 이제는 ‘유례없는 반성’을 할 때라는 것이다.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만큼 유례없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대가는 바로 ‘사회 재설계(social redesign)를 위한 양보적 합의’를 뜻한다. 
어떤 재설계인가? 바로 복지와 불평등 개혁이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란 것이다.

 장=처음 한 얘기로 돌아가는 측면이 있는데, 그러면 역시 시민의 양성, 시민의 자각이라는 미시적 기초부터 
우리 사회에 놓아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또 거기에 지름길은 없다는 의미로 들린다.

 송=시민이란 사익을 보존하려는 욕망을 가진 존재 아닌가. 
사익을 보존하고 가족 생계를 챙기는 게 시민의 목표인데, 무작정 이를 추구하면 자기 자신도 위태로워진다. 
옆의 사람을 배려하지 않으면 나까지도 괴로워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공익의 요체 아니겠나. 
사익을 보존하기 위해 공익이 필요하다. 그래서 공익이란 사익을 위한 공동의 명분 같은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런 깨달음을 다지고 확산시켜 가야 시민의 정치, 시민의 민주주의가 뿌리내린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만난 사람=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인터뷰 후기] 형형한 눈빛 속 담담한 기운


지난달 설 연휴를 앞둔 주말, 강원도 외딴 산촌의 조그만 서재에서 송호근 교수는 찬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글방에 홀로 앉아 노트북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었다. 명칼럼니스트이자 수십 권의 전문서를 써 온 글쟁이의 
화려한 이력을 떠받치고 있는 이면의 외로운 고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지만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우리 사회는 이제 유례없는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하는 
그의 눈빛에서 예전보다 더욱 담담해진 기운이 느껴졌다. 
우리 스스로가 과연 공동체의 시민인가 자문하고, 이제부터 차근차근 시민 민주주의의 풀뿌리를 다져 나가자는 
송 교수의 말에서 지금껏 생산적 복지국가의 건설과 이분법 사회의 극복을 위해 그가 써 온 무수한 글보다 
더 또렷한 힘이 느껴졌다. 
중도와 풀뿌리를 날개 삼아 ‘시민’을 되살리자는 송 교수의 호소가 가져올 반향이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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