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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북스토리] 제국이란 무엇인가

바람아님 2016. 2. 29. 19:12

(출처-조선일보 2016.01.31 김대식 KAIST 교수)


[김대식의 북스토리] 제국이란 무엇인가?

워싱턴, 런던, 파리, 베를린. 서양 강대국들의 수도다. 
2차대전 당시 도심 대부분이 파괴된 베를린을 제외한 나머지 수도들 간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신전 같은 거대한 건물들, 하얀 대리석 기둥,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할 만한 동상들. 그렇다. 
서양 강대국들 수도의 공통점은 고대 로마를 모방한다는 점이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일 수도 있다. 
영국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다던 할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가 모든 서양 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각주 뿐이라고 주장한 바 있듯
서양의 모든 역사는 어쩌면 고대 로마에 대한 “오마쥬”이니 말이다.

이탈리아 반도 티베르 강변에 자리잡은 로마. 서쪽 끝 영국에서 동쪽 끝 이라크까지, 북 독일 라인강에서 아프리카 사막까지 
점령한 로마. 범죄자와 피난민들이 개척한 작은 마을로 시작한 보잘것없는 로마. 
페르시아 제국, 몽골제국, 오토만 제국…제국의 크기로서는 로마를 버금갔지만, 로마의 법, 정치, 문명, 건축만이 
오늘날까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고대역사학자 메리 비어드(Mary Beard) 교수는 최근 소개한 저서 “SPQR”에서 질문한다. Senatus 
Populusque Romanus (SPQR), 고로 “로마의 원로원과 시민들”로 시작된 로마제국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일까? 
우선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 같은 사이비 역사학자 덕분에 가지게 된 편견부터 버리자: 
카이세르 같은 “위대한” 영웅들과 로마인들만의 독특한 야망과 능력 때문에 로마가 성공한 것은 절대 아니다. 
2천년 전 지중해 주변엔 카이세르보다 더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들도 있었고, 
로마보다 더 많은 능력과 야망에 넘치는 도시들도 많았다. 
그렇다면 로마 제국의 비밀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비어드 교수“우연”과 “확장된 시민권”이라고 주장한다. 
로마가 성공해야만 했던 필연적 이유는 사실 하나도 없었다는 말이다. 
기원 전 216년 카내(Cannae)전투에서 7만 명 넘는 로마 군사를 사살한 카르타고의 하니발 장군은 왜 바로 로마를 침략하지 
않았을까? 충분히 다를 수도 있었던 카르타고와 로마의 역사. 로마는 “역사”라는 도박에서 운이 좋았던 것이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고대 문명의 전쟁은 단순했다. 
[김대식의 북스토리] 제국이란 무엇인가“적을 물리치고 적의 땅과 재산을 빼앗는다”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로마는 달랐다. 
점령한 민족을 새로운 로마인으로 흡수하고, 과거 적의 신을 자신의 새로운 신으로 
받아들이는 유연성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로마 군과 싸우던 
갈리아인들의 후손은 로마 장군이 되었고, 북아프리카 유목인 후손은 로마 원로원 의원이 
되었다. 

로마인들만의 권한이었던 로마 시민권은 점차 이탈리아 반도 모든 이들이 가지게 되었고, 
드디어 기원 후 212년 카라칼라 황제는 로마제국에 살고있는 모든 시민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었다. “로마”는 단순히 더 이상 한 도시의 이름이 아닌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보편적 제국의 영원한 꿈이 되어버린 것이다.


Mary Beard
SPQR
Liveright,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