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에 대한 인간의 인지는 언어 발달과 밀접하다. 초창기 언어에서는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의 차이만이 있었다고 한다. ‘이름 없는 것은 천지의 시작이고, 이름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이다(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노자의 도덕경 제1장 구절과 맞닿는다. 그래서 독일의 실존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을지 모른다.
언어학자들은 언어가 인간의 색 개념에 영향을 준다고 본다. 아프리카 나미비아 북쪽의 힘바족이 쓰는 색 언어는 ‘세란두(serandu)’, ‘둠부(dumbu)’, ‘부로우(burou)’, ‘주주(zoozu)’, ‘바파(bapa)’ 5가지뿐이다. 녹색과 파란색은 함께 ‘부로우’로 불린다. 그래서인지 실험해 보면 힘바족은 이 두 색깔을 잘 구별해 내지 못한다. 오히려 밝은 초록과 어두운 초록은 쉽게 구분해 낸다.
인간의 눈은 빨강, 초록, 파랑의 빛만 받아들인다. 망막 중앙에 있는 원추세포를 통해서다. 이어 뇌로 전달되면서 이 세 가지 색이 섞여 여러 가지 다른 색으로 인식된다. 빛의 3원색(RGB)이라고 하는 이유다. 이 세 가지 색 중 하나라도 느끼지 못하면 색각이상이 생긴다.
선거의 계절이다. 도심 목 좋은 곳마다 원색의 물결이다. 언론에 등장하는 정치인의 의상은 온통 ‘깔맞춤’이다. 새누리당 당직자나 후보라면 빨간색 점퍼를 입고 빨간 넥타이를 매고 빨간 모자를 쓰는 식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파란색, 국민의당은 초록색, 정의당은 노란색이다. 무소속 후보들은 흰색을 주로 쓰고 있다.
정부가 애꿎게 ‘색깔의 정치’ 유탄을 맞았다. 얼마 전 행정자치부가 내놓은 공명선거 홍보물은 색이 선명하지 않고 침침해 보인다. 연한 청록색과 청자색 바탕에 주황색과 짙은 군청색 글씨의 조합은 부자연스럽다. 선거중립을 위해 주요 정당의 상징색을 모두 피해 디자인하다 보니 주목도 낮은 홍보물이 되었다고 한다.
표지 디자인이 화려한 책이라고 해서 늘 질 높은 콘텐츠를 보장하는 건 아니다. 미국 뉴욕타임스가 매년 말 선정하는 좋은 책들은 대부분 무채색 계열로 밋밋하게 디자인돼 있다. 아쉽게도 선거철 정치권의 색깔은 화려하기만 하다. ‘장밋빛’ 공약까지 더해지니 유권자들의 눈은 빙빙 돌 지경이다. 유권자가 두 눈 부릅뜨고 선택할 색깔을 잘 고르는 수밖에 없다.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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