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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프리즘] 층간소음 '가해자' 되어보니

바람아님 2016. 4. 21. 07:29

(출처-조선일보 2016.04.21 최수현 문화부 기자)


최수현 문화부 기자서울 강북의 25평 신혼집은 남편과 둘이 살기에 넉넉하고 아늑했다. 딱 하나 문제가 층간소음이었다. 
윗집에서 쿵쿵 뛰는 소리가 들리면 하늘이 무너지는 건가 싶었다. 
오전 7시만 되면 정확히 울려 퍼지는 청소기 소리에 휴일에도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갖게 돼 늘 피곤했던 내게는 더 큰 고통이었다. 
경비실에 연락을 해봤지만 윗집에서 인터폰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벼르고 벼르던 어느 날 드디어 윗집에 올라가 초인종을 눌렀다. 얼굴 까무잡잡한 외국인이 
문을 열고 나왔고 서너 살쯤 돼 보이는 여자 아이 두 명이 그 뒤에서 놀고 있었다.

나는 당황했지만 금세 매몰찬 얼굴을 하고 "아랫집에 임신부가 있으니 조용히 해주시라"고 영어로 말했다. 
두 아이에게 화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그 후 윗집은 잠잠했다 시끄럽기를 반복하다가 이사를 떠났다. 
우리도 아이가 태어나고 조금 지나 친정 옆 동네로 집을 옮겼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아파트니까 조용히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평화는 곧 깨졌다. 
이번엔 상대가 아랫집이었다. 
"발소리에 잠을 못 자겠다" "진동 때문에 형광등이 흔들린다" 
"예전 살던 가족은 애가 셋이었는데도 시끄럽지 않았다"고 허구한 날 인터폰이 걸려 왔다.

하루아침에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뒤바뀐 입장이 기가 막혔다. 
"아파트에선 발뒤꿈치 들고 다니는 게 기본 에티켓 아니냐"고 아랫집에서 다그칠 땐 미안한 마음이 들다가도 울컥했다. 
"이제 갓 돌 지난 아이가 뛰면 얼마나 뛴다고 그러시느냐"며 같이 따져보기도 했다. 
돌아서면 마음 한편이 영 찜찜했다.
[2030 프리즘] 층간소음 '가해자' 되어보니
어린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와 그 아래윗집 사람에게 층간소음은 매일 맞닥뜨리면서도 딱히 해결책도 없는 괴로운 
시빗거리다. 인터넷에는 복수법이 넘쳐난다. 
천장에 스피커 달기, 화장실 환풍기 켜고 담배 피워 연기 올려 보내기, 천장으로 비비탄 쏘기, 윗윗집에 양해 구하고 
들어가서 뛰기…. 읽다 보니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데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지 슬퍼진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신세 지고 폐 끼치고 미안해야 할 일이 수없이 생겨난다. 
아이를 낳기 전까진 전혀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던 세계다. 
언제부턴가 아랫집에서 인터폰이 걸려올 때마다 예전 윗집 살던 외국인 아이들 얼굴이 떠오른다. 
예전과 똑같은 상황이 지금 다시 벌어진다면 어떨까. 신경이 쓰이겠지만 전처럼 견디기 어려울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남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다. 
일단 우리 집은 꽤 많은 돈을 들여 거실 전체에 두꺼운 매트를 깔아보았다. 
그래도 안 되면 아랫집과 머리를 맞대고 다시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