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北韓消息

[설왕설래] 탈북 행렬

바람아님 2016. 8. 3. 23:58
세계일보 2016.08.02. 22:19

두만강변의 마을 삼합(三合). 싼허라고도 한다.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속한 이 마을의 강 건너는 북한 회령이다. 강 이쪽에서 소리치면 저쪽에서 들릴 정도로 가깝다. 강이 마르면 물은 발목에 찰 정도라고 한다.

“처음 건널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두 번째 건너던 날 겁이 덜컥 났다.” 10여년 전 만난 탈북 브로커의 말이다. 그날 그는 북한군에 잡혔다. 회령 보위부로 끌려가 조사를 받고 한 달 뒤 중국 공안에 넘겨졌다고 했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의 국적은 중국이라고도 했다.

지금 그곳은 어떨까. 살풍경스럽지 않을까. 돈을 집어 주면 도강을 눈감아 주던 북한군. 김정은이 집권한 뒤 “강을 건너는 자는 사살하라”고 했다고 한다. 강은 죽음의 경계로 변했다. 뇌물은 사라졌을까. 눈감아 주는 위험이 더 커졌으니 뇌물값은 뛰지 않았을까.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는 탈북 행렬은 멈췄을까. 되레 늘었다. 올해 1∼7월 국내에 들어온 탈북민은 815명. 지난해보다 15.6% 많다.


희한한 광경이다. 21세기 대명천지에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는 북한 주민들. 세계 곳곳에 난민 행렬이 이어지지만 빗발치는 총탄을 무릅쓰고 탈출을 감행하는 경우는 드물다. 영화 빠삐용에나 나올 법한 일이다. 빠삐용은 ‘악마의 섬’ 기아나 감옥을 탈출한다. 왜? 복수를 위해. 북한 주민은 왜 탈출하는가. 눈만 뜨면 “조국”과 “충성”을 외치는 곳이 아니던가.


‘논어’ 자로편. 초 대부 섭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정치란 무엇입니까.” 공자가 답한다. “가까이 있는 사람은 기뻐하고 멀리 있는 사람은 오는 것입니다(近者說 遠者來).” 정치를 잘해 먼 곳의 백성이 찾아올 정도라면 부국강병은 절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동양 정치철학의 요체다.


백성이 떠나면 망한다. 661년 당의 침략군을 물리친 고구려. 7년 뒤 망했다. 연개소문 세 아들의 내분에 흩어진 민심. 군사도, 백성도 뿔뿔이 탈출길에 오르지 않았던가. 국경 봉쇄에도 이어지는 탈북. 무슨 뜻이 담겼을까.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