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8.13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한가로운 거처 한가해지자 이끼 빛깔 한결 푸르고 | 閑居 苔色閑來碧(태색한래벽) |
숙종 시대의 저명한 문인 담헌(澹軒) 이하곤(李夏坤·1677~1724)이 무더운 여름 하루를 호젓하게 보냈다.
한가로운 때에는 평소와 다른 감각이 살아난다.
한가로워지자 이끼조차도 더 푸른 빛깔이 되고, 낮잠에서 깨자 매미 소리가 더 시원스럽게 들린다.
할 일도 없고 찾는 이도 없어 선방처럼 집안이 적막하다.
쓸쓸할 때는 안석에 비스듬히 기대 산과 물을 바라본다.
남들은 술로 시름을 잊지만 내게는 산수가 망우물(忘憂物)이다.
무료할 때는 글을 읽는다.
남들은 불로장생을 바라 약을 먹지만 내게는 글 읽는 것이 그보다 나은 처방이다.
오늘따라 짐스럽게 마음을 짓누르는 일이 하나도 없다.
차 맛을 음미하듯 한가로운 맛이 호젓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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