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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81] 둥지의 진화

바람아님 2016. 8. 23. 18:36

(출처-조선일보 2016.08.23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바다오리는 바닷가 절벽에 선반처럼 튀어나온 바위 위에 그냥 덜렁 알을 낳는다. 
남극에 사는 황제펭귄도 둥지를 만들지 않는다. 
알을 발등에 올려놓고 축 처진 뱃가죽으로 덮어 품는다. 
그러나 이들은 극히 드문 예외일 뿐, 새들은 모두 나름대로 정교한 둥지를 짓느라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다. 우리 연구진이 거의 20년 가까이 연구해온 까치는 둥지가 워낙 
나무 높은 곳에 있어 정말 얼마나 큰지 사람들이 잘 모른다. 
위아래로 약간 길쭉한 달걀 모양의 까치 둥지는 웬만한 어른이 양팔로 감싸 안기도 힘들다. 
폭과 높이가 각각 1m가 넘는다. 이렇게 거대한 둥지를 짓기 위해 까치는 적어도 달포 이상 
암수가 함께 쉴 새 없이 나뭇가지를 물어 나른다.

열악한 연구비 사정에도 불구하고 거의 20년 가까이 연구를 계속했더니 이제는 까치 연구에 관한 한 
우리 연구진이 명실공히 세계 제일이 되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까치 연구가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둥지가 원체 높기도 하지만 지붕까지 덮여 있는 바람에 나무를 타고 올라가 
좁은 출입구 안으로 들여다보기 전에는 알이나 새끼를 관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싼 이삿짐센터 사다리차를 빌려 연구하고 있다. 
접시 모양의 둥지는 조금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그 속의 내용물이나 거기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사고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가까운 사촌인 까마귀도 그저 평범한 접시 모양의 둥지를 만들건만 왜 유독 까치는 
지붕이 달린 둥지를 틀도록 진화했을까 야속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미국과 호주 생태학자들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접시 모양의 둥지에서 돔 형태의 둥지로 진화한 게 아니라 
그 정반대란다. 오늘날 70% 이상의 명금류(鳴禽類)가 접시 모양의 둥지를 만드는데, 알고 보니 그게 모두 주거 환경의 
간소화 흐름에 동참한 것이었다. 우리가 만들어준 펜션 모양의 예쁜 인공 둥지에 접시 둥지를 짓는 새들도 
넙죽넙죽 입주한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사람이나 새나 좋은 집 마다할 까닭이 없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