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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의 종횡무진 인문학] 시리아·체첸, 한국인은 잊고 싶겠지만…

바람아님 2016. 10. 15. 18:42

(조선일보 2016.10.15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


안나 폴릿콥스카야 '더러운 전쟁…'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시리아 정부군과 푸틴의 러시아 정부는 

반란군이 점령하고 있는 알레포시 동부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있다. 

러시아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이슬람 수니파와 이슬람국가(ISIS), 세속주의자가 연합한 반군이 승리를 

거둘 것 같았다. 하지만 러시아가 시리아의 아사드 정부를 돕기 시작하면서 판세는 점칠 수 없게 되었다.


과연 한국에서 이렇게 복잡한 시리아의 상황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슬픈 이야기지만 딱히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다른 선진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어쩌면 죄책감을 잊는 가장 빠른 방법은 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리아 내전은 잊혔다. 

한국을 포함해 다른 나라들은 소말리아·예멘·아프가니스탄·체첸도 마찬가지로 잊어버렸다.


잊힌 지역 중에서도 체첸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전개하고 있는 냉혹한 작전은, 이미 20세기 말에 체첸에서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당시에는 서방 세계가 이 지역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점이 차이일 것이다.


지난해, 체첸공화국의 람잔 카디로프 대통령은 시리아 야권 세력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가 51개국의 테러리스트들과 체첸에서 싸울 때, 어느 나라도 러시아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테러리스트는 수니파 극단주의 세력이다.

러시아로서는 '체첸이나 시리아에서 

수니파 극단주의 세력과 맞서서 세계를 

지킨다'는 명분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는 

셈이다.


체첸 전쟁은 서구 세계뿐 아니라 러시아 

안에서도 거의 기억되지 않는다. 

보기 드문 예외가 

안나 폴릿콥스카야라는 기자였다. 

'더러운 전쟁-

희망이 살해된 땅 체첸에 서다'(이후)는

아무도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 

체첸 전쟁에 대한 보고서다. 

우리는 미국과 프랑스에서 테러가 

일어나면 슬픔을 느끼지만, 

알레포에서 수백 명의 어린아이가 

폭격으로 죽었다는 뉴스를 들으면 

'알레포가 어디야?'라고 반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폴릿콥스카야는 

우리를 향해서 이렇게 말한다. 

"미래를 위한 증언으로" 이 책을 남긴다고. 

어쩌면 이 전쟁에 너무 깊은 관심을 

보인 탓일까. 그는 2006년 암살당했다.



더러운 전쟁

희망이 살해된 땅 체첸에 서다 

안나 폴릿콥스카야/ 주형일/ 이후/ 

2013/ 266 p

340.929-ㅍ53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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