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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포럼] 동일본 대지진에서 본 한국의 섬뜩함

바람아님 2016. 10. 13. 10:01

(조선일보 2016.10.13 강형기 충북대 교수·행정학)


강형기 충북대 교수·행정학지난 4월 일본 구마모토에서 발생한 지진은 우리가 어떤 문제에 직면하느냐가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떻게 접근했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했다. 

구마모토에서 진도 7의 지진으로 49명이 사망했지만, 

진도 7.8의 에콰도르 지진은 660명의 목숨을 앗아 갔다. 

구마모토에서 지진이 발생한 시각에 도쿄 시내에서 회식하던 아베 총리가 지진 발생 27분 만에 

총리 관저에서 기자들과 인터뷰했다. 그 기민함은 총리 관저 지하 1층에 설치된 '내각정보집약센터'와 

재난 상황을 신속하게 보고한 지방 간의 협동 시스템이 작동한 결과였다.


일본 국민도 미흡한 지진 대책 때문에 정부를 맹렬히 불신하던 때가 있었다.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원전 폭발 장면이 TV로 보도된 후 한 시간이 지나도록 당시 간 나오토 총리에게 

사실관계를 보고하는 시스템이 없었고, 총리가 원전을 운영하고 있던 도쿄전력 본사를 방문해 격노했다는 

신문 기사가 실린 적도 있다. 그러나 구마모토에선 지진 발생 수 초 만에 일본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의 핸드폰에 경보음이 

울렸고, 모든 텔레비전 방송이 속보를 내보냈으며, 구마모토 주변 51개 지자체가 즉각적인 피난 안내를 했다.



9월20일 오전 울산시 북구의 한 초등학교 복도 벽면에 균열이 발생해 있다. 

이 학교는 지난 12일 경주에서 발생한 5.8의 지진으로 인해 건물에 균열이 생겼다. /김종호 기자


재난 구호는 시스템으로 하는 것이지 현지에 나타난 지도자의 얼굴로 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정치가를 비롯한 중앙인사들이 현장에 부담되는 방문을 자제했다. 고베 지진 때 정보를 파악한다면서 

현장에 수도 없이 전화를 걸어 상황 보고를 요구했던 것도 반성했다. 중앙정부는 생사를 다투는 현장과는 너무 멀리 있다. 

재빠른 인명 구조가 시급할 경우에는 지자체가 그 구조 활동의 중심에 서야 한다. 

그래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과 권한을 명확히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조선일보 DB


일본은 전문가들이 '천 년에 한 번 일어나는 지진'이라고 했던 고베 지진 이후 거점 시설에 대한 내진 기준을 강화했고, 

단층 조사를 통해 지자체별로 방재대책을 재정비했다. 

일부 지자체는 활단층에 학교, 병원, 호텔 등의 건축을 금지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바다의 경우 진도 8까지의 쓰나미를 3분 내에 예보하는 예측프로그램도 도입했다. 

그런데 동일본대지진 때 후쿠시마에 3m의 쓰나미가 예보된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됐다. 

높이 9m의 제방을 믿고 대피하지 않았는데 지진 발생 45분 후 20m의 쓰나미가 밀어닥쳤다. 

안심하다가 더 큰 참변을 당한 것이다.


동일본대지진은 대책이 없었기에 참혹한 결과를 빚은 것이 아니다. 

지진 대책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과 원전 사고의 은폐 체질이 누적되면서 대재앙을 맞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안전하지 않은데도 안심하려는 우리의 자세가 무섭지 않은가! 

경주 지진의 진앙으로부터 50㎞ 내에 한국 원전의 절반인 원전 12개가 입지해 있다. 

그런데도 너무나 태연한 우리의 모습이 섬뜩하지 않은가! 

위기관리의 근본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다. 

지진과 원전 사고에 대비하는 것은 발등에 떨어질지도 모를 불을 걱정하는 수준이 아니다. 

다리가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는 재난을 상정해야 한다. 안심이란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