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화추월(春花秋月)’이란 말이 있다. 옛사람들은 ‘봄날의 꽃과 가을의 달빛’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상징한다고 여겼다. 중국 명나라 시인 당육여(唐六如)는 시 ‘화월음(花月吟)’에서 “봄밤의 꽃과 달은 천금에 값하누나(春宵花月値千金)”라고 노래했다. 봄꽃은 관능적이기도 하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김유정이 소설 ‘동백꽃’에서 봄꽃 향내를 묘사한 구절은 압권이다.
봄꽃을 즐기는 풍속은 오래됐다. 최남선은 ‘조선상식’에 “음력 2월 말, 3월 초부터 매화, 철쭉꽃이 피기 시작해 3월 중순까지 복숭아꽃, 살구꽃, 배꽃 등이 피는데, 이때 전국 각지에서 상화(賞花) 놀이가 행해지니, 이를 화류(花柳)라 했다. 화류를 꽃놀이라 했는데, 지방에 따라서는 ‘화전(花煎)한다’고도 한다”고 기록했다. 꽃을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먹기도 했다. ‘동국세시기’에는 “진달래꽃을 따다가 찹쌀가루에 반죽해 둥근 떡을 만들고 그것을 다시 기름에 지진 것을 화전병이라 한다”고 했다. 조선 후기 문신 임상원은 ‘염헌집’에 남긴 시에서 “진달래로 향긋한 떡 만드는 일 어찌 풍속을 지나치리”라고 읊었다.
조선시대 봄꽃 명소는 필운대였다. 살구꽃이 유명했다. 한성의 역사를 기록한 ‘한경지략(漢京識略)’에선 “필운대 주변 인가에서는 꽃나무를 많이 심어 서울 사람들이 봄날 꽃을 구경할 때 이곳을 제일로 꼽았다”고 했다. 일제강점기엔 창경원 밤벚꽃놀이가 유행했다. 일제가 창경궁에 벚나무를 심고 창경원으로 깎아내린 뒤 1924년부터 밤벚꽃놀이를 했다. 놀이공간이 없던 시절이라 꽃 피면 사람들로 북적였다. 1984년 창경궁 복원공사로 벚꽃놀이는 막을 내렸고, 상당수 벚나무가 여의도로 옮겨져 벚꽃길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봄꽃축제철이다. 국내 최대 봄꽃축제인 진해군항제가 어제 전야제로 막을 열었고, 서울 여의도 봄꽃축제는 오늘 시작된다. 화려한 벚꽃이 주목받지만 길가의 이름 모를 들꽃에도 눈길을 줬으면 한다.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본다”(‘순수의 전조’)고 하지 않는가.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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