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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고향에 세금내면 '다이아몬드 반지' 드려요

바람아님 2017. 4. 4. 23:32
KBS 2017.04.04. 18:28


'후르사토(ふるさと)납세'라는 제도가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고향 납세'다. 일본에서 지난 2008년 도입한 제도니 이제 10년이 되어간다.

제도를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 세금을 내는 게 아니라,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 고향에 세금을 내자는 제도다. 지방출신의 학생들은 지역에서 행정과 교육 등 각종 서비스를 받고 성장하지만 정작 취업은 도쿄나 대도시에서 해 그곳에서 세금을 내게 된다.


결국 지금까지 성장의 바탕을 마련해준 고향에 세금을 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제도로, '고향 납세'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고향뿐 아니라 자기가 응원하고 싶은 지자체를 지정해 기부를 할 수 있게 했다.

물론 고향에 낸 만큼 감면을 받아, 확정신고에 의해 2,000엔(우리 돈 2만 원 상당)을 넘기는 부분에 대해서는 소득세나 주민세를 공제받게 된다.


만성적인 재정 적자에 시달리는 지방자치단체로서는 반가울 수밖에 없는 제도다. 도입된 지 상당 시간이 흐르면서 지방재정에 상당 부분을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순기능 때문일까? 최근 정치권에서도 논의가 시작되는 분위기다.

2015년 고향납세 1위를 한 규슈 미야기현 미야코노조시의 경우 그 해에 42억 3천만 엔(약 423억 원)을 확충할 수 있었으니, 인구 17만 정도의 도시로서는 큰돈이라 할 수 있다.

미야코노조 시 홈페이지 갈무리


이처럼 지방 재정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다 보니, 각 지자체는 어떻게든 '고향 납세액'을 늘리기 위해 마케팅 아닌 마케팅에까지 나서게 됐고, 그러면서 등장한 것이 답례품을 주는 방식이다. 즉 어느 정도 액수 이상의 고액 납세를 하면 그 돈의 상당액을 선물로 돌려주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것.

예를 들어 고향납세 1위를 한 미야코노조시의 경우 5만 엔(약 50만 원) 이상의 고향납세를 하면 기부액의 50~60%에 해당하는 소고기 세트를 선물로 증정한다.


답례품의 면면도 화려하다. 온천 숙박권은 상식적인 정도. 나가노현 오카야 시는 15만 엔(약 150만 원) 이상의 고향 납세를 하면 '다이아몬드 장식품' 등을 주는가 하면 밥솥이나 드론을 주는 지자체도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고향 납세가 아니라 사실상 지자체의 '통신판매'로 변질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실정에 이르렀다. 물론 여기에 자신들에게 들어올 세금을 뺏기게 된 대도시 지자체들의 불만도 더해졌다.


지자체 간 답례품 경쟁이 과열 양상을 띠게 되자, 일본 총무성이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들고 나왔다.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총무성은 지난달 31일 '답례품의 가격을 기부액의 30% 이하로 하라'는 통지를 지역 각 지자체에 내려보냈다.

"고향 납세의 취지에 반하는 사례에 대해서는 필요 시 개별적으로 변경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는 언급도 뒤따랐다.

총무성이 이렇게 강하게 나선 것은 고향 납세가 당초 취지에서 벗어나 지자체 간 과당 경쟁을 부른 데다 절세와 탈세의 도구로 악용되는 움직임까지 포착됐기 때문이다.


고향납세제를 시작하던 2008년 약 81억 엔, 우리 돈 810억 원가량이던 총액이 답례품이 활성화되면서 2015년 1,653억 엔(약 1조 6천억 원)으로 급증했고, 2016년도에는 3,000억 엔(약 3조 원)을 넘길 것으로 추산됐는데, 이런 배경에는 순수히 고향을 생각하자는 본래 취지와는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판단이다. 특히 총무성이 상품권이나 선불카드 등 환전성이 높거나, 보석류 등 자산적 성격이 강한 답례품은 증정하지 말라고 요구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자체 간 경쟁도 과도해져, 답례품 비용도 크게 늘면서 2015년도 기부액 대비 답례품 비용이 40%(675억 엔)를 넘기게 됐다. 또 고액의 가전제품이나 상품권을 주는 곳에 고향납세가 몰려, 2015년도에 고향납세 상위 20개 지자체에 전체 납세액의 30% 정도가 몰리는 부작용도 나타나게 됐다.


총무성의 이러한 제한 조치는 사실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15년과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개선을 요구했지만, 강제성이 없는 까닭에 오히려 지자체 간 경쟁만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낳고 있는 '고향납세'제도가 어떻게 순기능을 되찾게 될지 주목해 볼 포인트다.


이승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