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9월 17일에 소련은 폴란드 정부가 더 이상 자국 영토를 통치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모든 외교협정도 무효화되었다고 선언한 후 곧바로 폴란드 영토를 침공했다. 거의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은 채 진격해 들어간 적군(赤軍)은 수십만명의 폴란드 군인과 경찰을 포로로 잡았다. 이들 가운데 사회 지도자급 인사 수만명이 소련 비밀경찰인 내무인민위원회(NKVD)에 넘겨져서 수용소에 갇혔다.
1940년 봄에 이들 가운데 2만명이 넘는 사람이 조직적으로 학살당했다. 제일 큰 규모로 학살이 자행된 곳이 스몰렌스크 인근의
카틴이라는 숲이었기 때문에 '카틴 숲 학살사건'이 주로 거론되지만, 사실은 이 시기에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학살이 이루어졌다. 당시 카틴 숲에서 살해된 사람만 해도 해군제독 1명, 장군 2명, 대령 24명, 중령 79명, 소령 258명을 비롯해서 폴란드군의 장교 절반이 넘었고 대학교수 20명, 의사 300명, 그리고 100명이 넘는 작가와 저널리스트, 수백 명의 변호사, 엔지니어, 교사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한 나라의 군의 핵심 멤버들과 지식인들을 조직적으로 제거하려 한 것이다.
독일군이 소련을 침공한 이후인 1943년 4월에 한 독일 병사가 거대한 시체 구덩이를 발견하고 나서야 학살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나치 독일의 선전상 괴벨스는 소련을 비난하는 좋은 소재로 카틴 숲 학살 사건을 이용했다. 그러나 소련은 역으로 나치 독일이 학살을 자행한 것이라고 공격했다. 명명백백하게 진실이 밝혀진 것은 1989년에 소련의 역사가들이 스탈린이 학살을 지시하고 직접 서명한 문건을 찾아내서 공개한 이후이다. 드디어 1990년에 소련은 내무인민위원회가 학살을 주도했고 그동안 소련 당국이 이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카틴 숲 학살 사건 70주년 추모행사에 참가하러 가다가 비행기 사고로 대통령 내외와 국가안보국장, 참모총장, 육·해·공군 사령관, 중앙은행 총재, 다수의 역사학자들이 사망했다. 폴란드의 비극은 언제 끝날 것인가.
(참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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