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03 조중식 디지털뉴스본부 취재팀장)
창업자가 회사에 피해 끼쳐도 문책 없는 국내 기업 이사회
미국에선 잡스도 머스크도 자기가 세운 회사서 쫓겨나
매사 공정위·검찰 칼 들이대나 기업 내부의 견제 시스템 필요
국내 기업 풍토에선 매우 드문 일이 최근 연이어 발생했다. 창업자가 물러난 일이다.
6월 9일 최호식 호식이두마리치킨 회장이 여직원 성추행 논란으로 사임했고,
6월 26일엔 정우현 미스터피자 회장이 가맹점 갑질 논란 끝에 물러났다.
호식이두마리치킨 가맹점들은 최 회장의 성추행 논란으로 매출에 직격탄을 맞았다.
4개 신용카드사를 통한 가맹점 매출액을 보니 사건이 불거진 이후 하루 평균 매출이
최대 40%까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미스터피자에서는 다양한 갑질 논란이 있었다.
친족이 운영하는 유통회사를 중간에 끼워넣어 가맹점에 20% 비싼 값에 치즈를 공급해왔고, 광고비의 90% 이상을
가맹점이 떠안도록 했다는 주장이 있다. 몇몇 가맹점주들이 '갑질'을 못 참겠다고 이탈해 점포를 열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점주의 매장 바로 근처에 직영점을 열어 '보복 영업'을 했다는 의혹도 있다.
1만4000원짜리 치킨을 5000원에 팔고 피자를 주문하면 돈가스를 추가로 주는 식이었다. 이런 상황에 내몰린
한 이탈 점주가 목숨을 끊는 일까지 있었다. 이에 검찰이 수사에 들어가자 정 회장은 회장직 사퇴를 발표했다.
'갑질논란'으로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오른 미스터피자 창업주 정우현 MP그룹 회장이 6월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사옥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 떠나고 있다. 정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회장직 사퇴를 발표했다. /연합뉴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도 창업자가 물러났다. 세계 최대 차량공유 업체인 우버의 창업자 트래비스 칼라닉이다.
올해 초부터 사내 성추행 은폐, 구글의 자율주행차 기밀 도용 등 잇단 추문에 휩싸이자 칼라닉은 '무기한 휴직' 카드로
위기를 돌파하려 했다. 그러나 회사 2인자(COO) 후보 면접을 준비하던 그에게 편지 한 장이 전해졌다. 이사회 의장이
주도해 주요 주주 5명이 서명한, 즉각 사퇴를 요구하는 서한이었다.
결국 6월 20일 그는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났다.
미국 기업에서 창업자가 쫓겨난 사례는 드물지 않다. 스티브 잡스도 애플에서 쫓겨난 적 있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 창업자로 유명한 일론 머스크는 신혼여행을 가는 길에 자신이 창업한 페이팔의 CEO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이사회 통보를 받았다. 소셜커머스 업체인 그루폰 창업자 앤드루 메이슨도 이사회 결정으로 물러났다.
그는 "오늘 해고당했다"는 메시지로 직원들에게 사임 사실을 알렸다.
국내 기업의 창업자가 물러난 사례는 미국의 경우와는 다르다.
미국에선 이사회가 강제 퇴진시킨 것이다.
창업자라도 쫓겨날 수 있는 시스템이 작동했다. 국내 기업에선 창업자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물러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언제든 복귀를 선택할 수도 있다. 물러나도 물러난 것이 아니다.
수많은 가맹점과 관계사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기업 브랜드 가치도 크게 훼손했지만 창업자를 이사회 시스템으로
문책한 국내 사례는 거의 없다.
국내 기업 이사회가 그런 권한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산 2조원이 넘는 대기업은 3명 이상 사외이사를 둬야 하고, 이들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이사회와 감사위원회를 둬야 한다.
막강한 권한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도 5대 그룹 상장기업 62개사 이사회가 지난해 처리한 안건 1615건 가운데
가결되지 않은 것은 단 3건에 불과했다. 사외이사들이 거수기 노릇만 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창업자나 CEO의 전횡을 견제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국내에서 가장 이상적인 기업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는 포스코와 KT도 마찬가지다.
'국정 농단 사건' 수사 결과를 보면 청와대의 '농단'은 두 기업에서 무사통과였다.
두 CEO는 형사책임은 몰라도 기업과 주주엔 책임을 져야 했다.
그런데도 두 기업의 이사회는 책임을 묻기는커녕, 올 초 임기가 만료된 두 사람을 CEO로 재선임했다.
새 정부 들어 공정거래위원회에다 검찰까지 나서 기업의 불공정한 갑질,
대주주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강력한 규제 의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기업 현장의 문제를 조사와 수사로 해결할 수는 없다.
기업 내부의 감시와 견제 시스템, 이사회가 제 기능을 하도록 해야 한다.
개혁의 초점도 거기에 맞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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