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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병들은 노르망디 절벽에 기대서 책을 읽었다

바람아님 2017. 9. 8. 18:01

(조선일보 2017.09.08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


[김시덕의 종횡무진 인문학] 매닝 '전쟁터로 간 책들'


사람은 왜 책을 읽는가?

전쟁, 천재지변과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책을 찾았다.

책은 정신을 지켜주는 가장 가벼운, 그리고 든든한 무기가 되었다.


책 표지 이미지

전쟁터로 간 책들 : 진중문고의 탄생

몰리 굽틸 매닝 지음/ 이종인/ 책과함께/ 2016/ 327 p

029-ㅁ378ㅈ=2 / [정독]인사자실(2동2층)/[강서]2층



2011년 3월 11일에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그 직후, 이와테현 모리오카에 있는 사와야 서점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시민들은 무슨 책이라도 좋으니 아무튼 책을 달라며 앞다퉈 찾아왔다.


대재앙 이후,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사용할 수 없고, 먹을 것도 부족한 절박한 시간이 이어졌다. 

그런 비상 상황에서 책은, 시민들이 자기 자신의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값싸면서도 

안정적인 생활필수품이었다.


똑같은 일이 제2차 세계대전 때에도 있었다.


추축국(樞軸國) 독일과 일본에 맞서 싸우기 위해 미국은 전 세계로 병사들을 보냈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부닥친 병사들은, 정신을 지켜줄 물건을 찾았다. 

이러한 절박한 요구에 답하기 위해, 뒷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책이 채택됐다. 

페이퍼백 형태의 진중문고다.


진중문고로는 연애소설에서 법률서까지 실로 다양한 책이 선정됐다. 

병사들은 내용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노르망디로 출발하기 전, 짐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이런저런 물건을 버리는 중에도, 책을 버리는 병사는 거의 없었다. 

책은 "많은 군인에게 절실히 필요한 오락을 제공해주는" 유일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노르망디 전투가 시작됐다. 

잘 알려졌듯이 상륙 초기에 연합군 병사들은 몇 발자국 내딛기도 전에 독일 측의 공격에 쓰러졌다. 

부상병들은 노르망디 바닷가에 쓰러진 채로 책을 읽었다. 

"오마하 해변을 뚫고 나아간 군인들은 심한 부상을 당한 전우들이 절벽 아래쪽에 몸을 기대고 책을 읽던 광경을 

결코 잊지 못했다." 소총이 병사들의 목숨을 지켜주는 무기였다면, 책은 정신을 지켜주는 가장 가벼운 무기였다.


전쟁터에서 병사들을 지켜준 책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그들의 인생을 새로이 열어줬다. 

폭탄이 터지는 전쟁터에서도 목숨 걸고 역사, 경영, 수학, 과학, 언론, 법, 고전문학을 읽어낸 그들이었다. 

징용되기 전까지 책 읽는 습관이 없던 낮은 신분과 가난한 계층의 젊은이들도, 책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를 

전쟁 중에 깨달았다. 전쟁이 끝나자 그들은 대학으로 가서 학업에 매진했다.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


사람은 왜 책을 읽는가. 

대학에서 미국사를 전공하고 지금은 법조인으로 일하는 몰리 굽틸 매닝(37)의 

'전쟁터로 간 책들―진중문고의 탄생'(책과함께刊)은 이 질문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준다. 

필자가 지난 몇 년 사이에 읽은 최고의 책이다.




2차 대전 포화 속에서도 美軍은 책을 놓지 않았다


(출처-조선닷컴 2016.06.25 김성현 기자)


전쟁터로 간 책들|몰리 굽틸 매닝 지음|이종인 옮김

책과함께|328쪽|1만5000원


2차 세계 대전은 사상전이자 미디어전(戰)이었다. 

독일 나치는 미국인 아나운서들을 고용한 뒤 일본의 도움을 받아 하루 18시간씩 미국 본토까지 

반미(反美) 라디오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나치가 아인슈타인과 토마스 만 등 금서(禁書)로 지정된 책을 1억권 가까이 불태워 없애자, 

이에 맞서 미 도서관협회는 나치와 싸우는 미군에게 2000만권의 책을 보급하는 운동을 펼쳤다. 

이 캠페인은 1억2300만권의 진중 문고 출간으로 이어졌다.


미국 변호사가 2차 대전 당시 진중 문고의 탄생 과정을 살핀 역사서다. 

미군 병사들은 빗발치는 포화 속의 참호나 부상 뒤의 야전 병원에 누워서도 책을 읽었다. 

전쟁의 불안감과 맞서야 했던 병사들에게 언제 어디서든 휴대 가능한 책만큼 좋은 오락거리이자 

위안이 없었던 것이다. 

전후(戰後) 귀국한 제대 군인들은 대학에 들어갔다고 하니, 독서가 인간을 바꾼다는 말이 과히 틀리지 않다.



금서령(禁書令)의 말로


(서울경제 2017.05.08)


미국은 독일과 정반대의 행보를 걸었다. 

미국의 여류 변호사이며 저술가인 몰리 굽틸 매닝은 저서 ‘전쟁터로 간 책들’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히틀러가 인쇄된 글자를 파괴함으로써 파시즘을 강화할 때, 미국은 미국인들에게 더 많은 독서를 권했다. 

나아가 그들은 전장에 나간 군인에게까지 책을 사서 보냈다.' 

미국이 2 차 대전 중반부터 1947년까지 병사들에게 보낸 책은 1억2,300만권. 병사들은 참호 속에서 책을 읽었다. 

책은 병사들을 강하게 만들었다. 책이 병사를 살린 적도 있다. 

군복 상·하의에 쏙 들어갈 수 있도록 작게 만든 책이 총탄으로부터 병사를 구해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