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10.10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전 주일대사관 1등서기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저자
'나베(鍋)'는 솥 또는 냄비를 지칭하는 일본말이다. 원래는 그릇을 의미하지만 뜻이 진화하여 이제는
그 자체로 요리를 나타낸다. 한국에서도 창코나베, 요세나베 등의 요리를 파는 일본 음식점을 볼 수 있다.
일본의 나베 요리는 한국의 전골 요리와 비슷하지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
그것은 과정(process)의 중요함이다.
한국의 전골 또는 찌개는 처음부터 모든 재료를 일거에 다 집어넣고 끓여낸다.
반면 일본에서는 재료별로 투하하는 순서와 타이밍이 있고, 일본인들은 이를 무척이나 중요시한다.
이 순서와 타이밍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일본에는 '나베부교(鍋奉行)'라는 속어가 있을 정도이다.
부교(奉行)란 에도 시대 일본의 지역 행정을 담당하는 관료의 명칭으로 나베부교는 나베 요리를 만들 때 국물의 양, 재료와
소스의 투하 시기 조절 등을 담당하는 사람을 부교라는 관료에 빗대어 지칭하는 말이다.
한국말로 굳이 옮기면 '전골 사또' 정도가 되겠다. 단어의 유래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속설이 많다.
한 가지를 소개하면 자신의 전속 요리사가 끓여주는 나베 요리가 맛이 없어 속상해하던 한 영주가 성 밖 마을의 촌로(村老)가
나베를 맛있게 끓인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서 나베 요리를 청하자 그 촌로가 국물의 양은 어쩌고, 재료의 순서는 저쩌고
설명을 하면서 나베를 끓여냈는데, 그게 기가 막히게 맛있어서 "지금부터 귀하를 나베부교로 임명하노라~"고 했다는
민담이 전해 내려온다.
나베부교는 은유적으로 사용될 때가 많다.
과거에는 어떤 분야의 권위 있는 의견을 제시하는 전문가, 현인(賢人)을 의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현대적으로는 다소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즉, 나베 끓여 먹을 때 시시콜콜 잔소리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에서
착안하여 사소한 일까지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간섭하는 귀찮은 존재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
관료의 이미지는 어느 나라에서나 공통점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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