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03.12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 2인칭 회고록 '내면 보고서'
가족·제도 벗어나려 했던 성장기, 편지형식으로 유년시절 회상
- 두 巨匠의 서한집 '디어 존…'
노벨상 작가 쿳시와 美작가 폴, 편지로 인류에 대한 생각 나눠
내면 보고서 폴 오스터 지음ㅣ송은주 옮김ㅣ열린책들 | 디어 존, 디어 폴 폴 오스터, J.M.쿳시 지음ㅣ송은주 옮김 |
폴 오스터(69)는 '유럽인의 영혼을 지닌 미국 작가'로 꼽혀왔다.
프랑스 인문학의 영향을 크게 받아 실존적 성찰이 담긴 산문을 구사하면서 시적(詩的) 울림도 들리는 소설을 써왔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정체성' 찾기를 중심 테마로 삼은 소설뿐 아니라 명상록에 가까운 산문집을 여러 권 냈다.
국내에도 오스터 애독자가 적지 않기에 소설 '뉴욕 3부작'과 산문집 '빵을 굽는 타자기' 등 27권이 우리말로 옮겨졌다.
이번엔 오스터가 유년기와 청년기를 되돌아본 회고록 '내면 보고서'와 더불어 200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쿳시와 나눈
서한집 '디어 존, 디어 폴'이 번역됐다.
오스터는 2013년에 회고록 '겨울 일기'를 낸 적이 있다.
60여 년의 삶을 '나'가 아니라 특이하게도 '당신'이란 2인칭 시점으로 회상한 기록이었다.
그는 마치 거울에 비친 자신을 들여다보는 듯한 태도로 글을 써내려갔다.
그는 "당신이 살아 있음을 기억할 수 있는 첫날부터 오늘까지 이 몸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살펴보자"라며
스스로를 타인처럼 대상화했다.
그는 "삶이란 몸에 생긴 흉터의 연속이고 죽음은 몸속의 추억들이 스스로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썼다.
오스터는 새 회고록 '내면 보고서'에서도 2인칭을 유지했다.
앞서 낸 회고록이 성년기를 다룬 것과는 달리, 이번엔 유년기부터 스무 살 문턱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로 더 거슬러 올라갔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살아 있었다'로 시작한 회고록은 동화를 실제와 구별하지 못한 유년기를 온갖 환상으로 충만했던
시기로 그려냈다. 그는 조숙했기에 일찍 문학에 눈을 떠 생의 도약을 경험했다.
14세 때부터 헤밍웨이와 카프카, 오웰을 읽었다고 한다.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도 읽었다.
"열네 살, 두려운 나이인 열네 살에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 태어난 환경의 포로였지만, 이제 그 환경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때 당신이 꿈꾼 것은 탈출뿐이었다"고 썼다.
책 읽는 폴 오스터(왼쪽 크로키)와 생각하는 폴 오스터. 오랫동안 함께 작업한 화가 샘 메서의 작품이다. /그림=샘 메서
오스터의 회고록 중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뉴욕 컬럼비아대학 신입생 시절을 되돌아본 후반부다.
그는 당시 뜨겁게 사랑한 여학생에게 보낸 편지의 복사본을 수십년 뒤 받아보곤 너무나 낯선 젊은 날의 초상을 바라보게
됐다고 한다. 그는 편지의 화자를 '당신'이라 부르며 그를 회상하면서, 젊은 날의 자신을 향한 편지 형식으로 회고록을
풀어나갔다. 젊은 오스터는 '미국의 억압받는 계급들이 들고일어나지 않는 것은 국가주의 신화가 그들이 억압받지 않는다고
느끼도록 기만해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문학을 유일한 자아 실현의 길로 여겼다.
"나에게 세계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자아의 문제이고, 해결책은 안에서 시작하고 그다음에야 밖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야.
핵심은 숙달이 아니라 표현이야"라고 외쳤던 것.
'내면 보고서'는 오스터가 자란 1950 ~60년대 미국 사회의 풍속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뒤로 갈수록 한 소년이 가족과 제도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또 다른 현실의 문을 여는 열쇠를 문학에서 찾아내는 과정을
성장 소설처럼 풀어놓는다.
반면에 서한집 '디어 존, 디어 폴'은 문학의 거장이 된 오스터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 쿳시와 나눈
성숙한 대화의 기록이다.
두 사람은 인류의 불행이 반복되는 것은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불행 속에서 살아가는 편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데 동의한다. 오스터는 유대인이면서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 엉뚱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스라엘 국민을 몽땅 미국 와이오밍으로 이주시키고 이스라엘 땅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허용하자는 것.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디에서 살든 부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응수해 쿳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과감하게 제안한다.
"우리는 졌다. 이제 무기를 내려놓고 최선의 항복조건에 대해 협상을 하자. 위안이 된다면,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라고 팔레스타인 지도부가 선언해야 한다는 것.
이렇듯 자유분방한 작가들의 대화가 오간 서한집은 쿳시의 편지로 끝나며 두 사람의 공통된 입장을 정리한다.
"세상은 그러한 경이를 계속해서 토해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배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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