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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정의는 80년 前 죽어갔다, 분열과 냉대 속에서

바람아님 2017. 12. 30. 19:39

(조선일보 2017.12.29 김성현 기자)


美 저널리스트·작가의 스페인 내전 취재기
현장 답사·인터뷰 통해 현재적 시점에서 조명

히틀러 지원받은 叛軍, 공화파는 국제사회 외면… 敵前분열 속에 패배


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애덤 호크실드 지음
이순호 옮김|갈라파고스
616쪽|2만7000원


1938년 4월 4일 새벽. 스페인의 북동부 산악 지역을 가로지르는 에브로 강둑 위로 벌거벗은 두 남자가

기어 올라왔다. 조지 와트와 존 게이츠.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 장군이 이끄는 스페인

반군 세력에 맞선 미국 의용군 부대원들이었다. 이들은 반군의 추격을 피해서 부츠와 옷을 벗고

차가운 물속으로 뛰어든 터였다.


허기와 추위에 지쳐서 길가에 쓰러진 이들 앞에 검은색 자동차가 멈춰 섰다.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기 위해 뛰어든 '뉴욕타임스'의 특파원 허버트 매슈스와 북미신문연맹(NANA)의 종군기자

어니스트 헤밍웨이였다. 두 기자는 담요 두 장을 건네줬고, 이들은 감격에 부둥켜안았다. 담요로 젖은 몸을 가린 채

오들오들 떨고 있는 두 병사의 의기를 북돋기 위해 일장 연설하는 헤밍웨이.

"너희 파시스트 놈들(프랑코의 반군), 아직 승리를 말하기는 일러. 네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말리라!"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 이후에도 스페인 내전(1936~1939)에 대한 책은

여전히 필요할까. 1942년생 미국 저널리스트이자 작가가 지난해 발표한 이 책은 질문에 대한 훌륭한 답변이 된다.

1차 대전과 스탈린의 무자비한 공포 정치에 대해 굵직한 논픽션을 발표했던 저자는 이번 책에서도 미국 의용군과

종군기자들을 연결 고리 삼아 스페인 내전 속으로 들어간다.


현장 답사와 자료 조사, 생존자와 유족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한 이 책의 미덕은 철저하게 현재적 시점에서 사건을 조명하고자

애쓴다는 점이다. 역사학에서는 일종의 금기로 여기는 '가정(假定)'도 저자는 머뭇거림이나 망설임 없이 쏟아낸다.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이 그토록 절박하게 구매를 원했던 공화파에 무기를 팔았다면? 그랬다면 그 무기들은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보내준 비행기, 잠수함, 군대를 쳐부술 수 있었을까? 수백만 명의 사망자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야기한 2차 대전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까?"


환희는 오래가지 못했다. 1936년 여름 장갑차 위에 올라간 스페인 무정부주의자 민병대원들. 3년 뒤 스페인 내전은 반군의 승리로 끝났다.갈라파고스

환희는 오래가지 못했다. 1936년 여름 장갑차 위에 올라간 스페인 무정부주의자 민병대원들.

3년 뒤 스페인 내전은 반군의 승리로 끝났다./갈라파고스


20세기 현대사에서 스페인 내전이 중요한 건, 2차 대전의 음울한 전주곡이자 예고편이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공화파 정부가 프랑코의 반군에 항복한 건 1939년 4월이었다. 불과 5개월 뒤 독일이 폴란드에 침공하면서

2차 대전이 발발했다. 스페인 내전이 공화파와 반군 사이의 내전인 동시에 국제전이었으며, 2차 대전의 사실상

전초전(前哨戰)이었다는 점도 여전히 유의미한 이유다.

2차 대전 당시 미국이 연합국의 일원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스페인 내전에서도 미국은 공화파 정부의 편에 섰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기 쉽다. 하지만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이런 선입견을 무너뜨린다.

미국의 가톨릭 교도 중에는 공산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이 주축을 이룬 스페인 공화파 정부에 대한 반감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루스벨트 행정부도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공화파 무기 지원을 끝까지 망설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뉴욕타임스에서 파견한 종군 기자 2명도 정부군과 반군 지지자로 나뉘었다.

총성만 울리지 않았을 뿐, 스페인 내전은 사실상 미국 내에서도 일어났던 셈이다.


스페인 내전이 비극적인 건 최대 50만명으로 추정되는 사망자 숫자 때문만은 아니다.

스페인 내전 당시 미국은 중립을 고수했고, 히틀러에 대해 유화 정책을 펴고 있던 영국도 내전 막판인 1939년 2월 프랑코

체제를 인정했다. 세계 공산주의 확산을 위해 무기 지원을 했던 소련을 제외하면, 스페인 공화파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외면당했던 것이다. 공화파 내부의 주도권을 놓고 무정부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이 사실상 '적전(敵前) 분열'한 것도

패전의 원인이었다. 공화파 의용군으로 참가했던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는 쓰라린 환멸의 노래이기도 했다.


반면 스페인 반군은 내전 발발 직전인 1936년 7월 독일 공군의 공수(空輸) 작전 덕분에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스페인 남부 세비야로 병력 손실 없이 이동했다. 이런 살풍경을 보여준 뒤 저자는 우리에게 말한다.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군사적 공수였던 독일의 도움이 없었다면 반란은 신속하게 진압되었을 것"이라고.

결국 호미로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했다는 통탄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런 어리석음에서 과연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책 속으로] ‘기울어진 전쟁’ 뛰어든 미국인 … 무엇을 위해 싸웠나


(중앙일보 2017.12.30 김환영 논설위원)


스페인 내전,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애덤 호크실드 지음
 이순호 옮김, 갈라파고스
 
스페인 내전은 한국전쟁과 함께 20세기 주요 내전이자 국제전·대리전이다.

각기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의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가 한국전쟁과 마찬가지로 특히 미국에서 ‘잊혀진 전쟁’인 스페인 내전을

오늘의 역사 속으로 다시 끄집어냈다. 지은이 애덤 호크실드는 하버드대 출신 역사가·언론인이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인 이 책의 영문판 부제는 『스페인 내전의 미국인들, 1936~1939』이다.
  
1936년 2월 스페인 총선에서 자유주의·좌파·세속주의·페미니즘의 연합인 인민전선이 승리해 공화파 정부를 수립했다.

이에 대항해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 장군이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프랑코는 군부·대지주·자본가·왕당파·파시스트·가톨릭교회 등으로 구성된 국가주의파의 지지를 받았다.


독일과 이탈리아에게 스페인 내전은 제2차 세계대전을 위한 ‘연습 게임’이었다.
이탈리아는 병력 8만 명을 투입했고 독일은 최신 무기를 실험했다.
양국은 국가주의파에 요즘 돈 70억~100억 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원했다.
그러나 민주국가 영국·프랑스·미국은 공화파를 외면했다. 공화파는 대신 소련에 지원을 요청했다.
결과적으로 스페인 내전은 공산주의와 파쇼주의라는 양대 국제 전체주의 세력의 각축장이 됐다.
내전이 국제전이자 대리전으로 확산된 과정이다.
 
공화파 편에서 싸우기 위해 전 세계 50개국에서 4만 명이 몰려들었다. 그 중 미국인은 2800명이었다.
다수가 뉴욕 출신, 노조운동가, 이민자, 유대인, 공산주의자였다.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 조지 오웰(1903~50) 등 공화파 편에 선 다국적 의용군에게 스페인 내전은 민주와 반민주,
선과 악의 대결장이었다.
그들은 이상주의와 1860년대 생산된 소총으로 무장했다.
그러나 ‘기울어진 전쟁터’에서 승리는 프랑코의 것이었다.
스페인에서 독재가 종식된 것은 프랑코가 사망한 1975년이었다. 



[책의 향기]스페인 내전과 3만5000여 명의 지식인

(동아일보 2017-12-30 전승훈기자)


◇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애덤 호크실드 지음·이순호 옮김/616쪽·2만7000원·갈라파고스


1938년 10월 28일 바르셀로나. 누더기 제복을 입고 짝짝이 신발을 신은 병사들을 향해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환호했다.

이날은 미국, 독일, 이탈리아 등 전 세계에서 스페인 내전(1936∼1939)에 참전하기 위해 모인 국제여단의 고별 열병식이

열리던 날이었다. 


이 책은 스페인 내전에 의용군으로 참여한 세계 각국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스페인 내전을 들여다본 책이다.

조지 오웰은 공화파의 편에서 무정부주의 조직의 민병대 소속으로 참전했고 귀국 후 그 경험을 ‘카탈루냐 찬가’에 남겼다.

생텍쥐페리는 파리의 일간지 특파원으로 내전을 취재했다.

헤밍웨이는 종군기자 자격으로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면서 파시스트에 반대해 게릴라로도 활동했다.

뉴욕타임스의 두 특파원이었던 하버드 매슈스와 일리엄 카니는 각각 공화파와 프랑코 지지자로서 불꽃 튀는 취재경쟁을 벌였다.

저자는 유명인뿐 아니라 학생, 의사, 간호사, 일반인 등 다양한 의용병이 남긴 기록물을 통해 잊혀진 스페인 내전의 모습을

재구성했다.  


스페인 내전은 공화파 인민정부에 맞서 쿠데타를 일으킨 프랑코 군대 간 전쟁이었다.

파시즘 성향의 프랑코는 히틀러와 무솔리니로부터 병력, 무기를 지원받았지만

공화파는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지원받은 것 외에는 다른 나라의 병력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 대신 전 세계 53개국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한 지식인 3만5000여 명이 일제 의용군 조직인 국제여단을 구성해

공화파를 위해 싸웠다. 


스페인 내전에서 결국 공화파는 참혹하게 패하고 말았다. 그들에겐 제대로 훈련된 군대도, 무기도 없었다.

회고록을 쓴 사람들 중에는 자신들이 전쟁에 관해 너무 순진하게 생각했음을 인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추구했던 이상은 거대했다.

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었던 스페인 내전은 민주주의, 공산주의, 스탈린주의, 무정부주의 등

온갖 이념이 각축전을 벌인 20세기 최고의 이데올로기 전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