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2018-03-19 정창룡 논설실장)
“공산주의자들의 이중성은 아무리 경계해도 지나치지 않다.”
공산주의자와의 협상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등 3대를 이어온 원조 공산주의와 상대하고 있다.
6·25전쟁은 김정은의 할아버지인 김일성의 남침에서 시작됐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처음으로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맞붙은 전쟁이었다.
찰스 터너 조이 미 해군제독은 1951년 7월 첫 정전회담부터 10개월여 동안 유엔군 측 수석대표로 공산주의와 협상에 나섰다.
이 기간은 그에겐 공산주의에 넌더리를 내게 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북은 고비마다 ‘죄 뒤집어씌우기’, ‘나쁜 놈 내세우기’, ‘발뺌하기’, ‘상대방 제의에 역제의로 시간 끌기’ 등 온갖 전술을 구사했다.
그 치밀함과 집요함, 끈기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훗날 그는 자신의 저서 ‘공산주의자는 어떻게 협상하는가’(How Communists Negotiate)에 이때 얻은
교훈을 낱낱이 기록했다.
첫 번째를 보자. ‘적이 휴전을 원할 때 압박을 늦추지 말라’.
공산주의자들은 상대방이 양보하면 자신들도 양보할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방이 약하다는 신호로 본다.
‘공산주의자에게 1인치를 양보하면 1마일을 얻으려 한다’는 말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는 이를 막기 위해 ‘공산주의자와의 약속은 믿지 마라, 오직 행동만 믿으라’는 주문을 잊지 않았다.
주문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이후 공산주의와 협상에 나섰던 많은 사람들이 이를 확인하고 있다.
1994년 북한과 미국이 각각 핵사찰 허용과 경수로 제공을 약속했던 제네바 합의를 이끌었던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북핵대사의
“(최근 북과 관련한 일련의)회담이 성공적이기를 바라지만, 내 돈을 성공에 걸지 않겠다”는 말은 시사하는 바 크다.
“북은 제네바 합의를 하는 순간에도 비밀리에 파키스탄과 접촉해 원심분리기와 우라늄 농축 기술을 터득하고 있었다”는
것이 이유다. 지난 24년간 북핵 문제를 다뤄온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 역시 비슷한 입장이다.
그동안 “북과 모두 8차례 합의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우리는 똑같은 영화를 너무 여러 차례 보고 있다”고 빗댔다.
그동안 북은 네 차례 핵개발을 안 한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키지 않았다. 만든 핵을 폐기하겠다고도 4번 약속했다.
이 역시 한 번도 지키지 않았다. 클링너의 말은 이를 두고 나온 것이다.
정부가 4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과거 공산주의자와의 협상의 역사를 얼마나 공부했는지 의문이다.
청와대에선 오히려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란 비유를 내놨다.
이는 아무도 풀 수 없다는 매듭을 아시아 원정에 나선 알렉산더가 단칼에 잘라 풀었다는 이야기다.
정부가 서두르고 있다는 인상을 갖기에 충분하다.
4월 말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핵과 평화협정 체결 등 현안을 단번에 해결하겠다는 욕심이 묻어난다.
공산주의와의 협상에서 서둘면 필패다. 완벽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엔 지름길이 있을 수 없다.
하나를 받고 하나를 내어주는 거칠고 험한 길이 놓여 있을 뿐이다.
반면 미국은 당근과 채찍을 확실히 하고 있다.
5월 북미 정상회담을 기꺼이 받아들였으면서도 ‘북미가 만나 날씨 이야기라도 하자’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전격 경질했다.
그 자리엔 대북 강경파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CIA국장을 지명했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북 강경파를 전면에 포진시켜 대북 압박 기조를 한껏 고조시키는 모양새다.
이쯤 되면 트럼프는 협상의 달인이거나 과거에서 배우는 사람이다.
조이 제독의 가르침이다.
“공산주의자와의 협상에서 우리가 무력 사용 가능성을 포기할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은 절대적 금물이다.
오히려 무력 사용이 임박했다는 위협을 실감할 때라야 그들은 양자 간 핵심 쟁점을 해소하기 위한 실질적 협상에
진지한 자세로 임한다.”
공산주의자들과 협상할 때 명심해야 할 10가지 (Daily 월간조선 08 2017 MAGAZINE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 |
1951년 11월 30일 판문점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유엔군 측 휴전회담 대표단의 모습. 왼쪽부터 하워드 터너 미 공군 소장, 한국 육군 이형근 소장, 회담 수석대표인 터너 조이 미 해군 제독(중장), 알 리비 미 해군 제독(소장), 헨리 호데스 미 육군 소장, 알레이 버크 미 해군 제독(소장).
“여건이 갖춰지고 한반도의 긴장과 대치국면을 전환할 계기가 된다면 언제 어디서든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남북대화에 나서는 이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하나 있다. C. 터너 조이 제독이 쓴 《공산주의자는 어떻게 협상하는가?》라는 책이다. 조이 제독은 휴전협상이 시작된 1952년 7월부터 10개월 동안 유엔군측 수석대표로 일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공산주의자들의 농간 때문에 온갖 쓴맛을 다 보았다. 1951년 7월 10일, 개성 봉래장에서 정전(停戰)회담 첫 회의가 열렸을 때였다. 양측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첫 대면을 했을 때, 유엔군측 수석대표 C. 터너 조이 제독은 폭삭 주저앉은 듯한 모습이었다. 후일 그는 이때 자신의 모습을 ‘어뢰를 맞고 침몰하고 있는 모습의 해군제독’이라고 표현했다. 반면에 공산측 대표단장인 남일(당시 북한군 총참모장, 후일 외무상 역임)은 조이 제독보다 1피트는 솟아 있었다. 공산측이 조이 제독에게는 보통 의자보다 낮은 의자를, 남일에게는 보통 의자보다 4인치 정도 높은 의자를 내주었기 때문이다. 조이 제독은 재빨리 옆의 의자로 바꾸어 앉았지만, 공산측 사진사들의 사진촬영이 이미 끝난 다음이었다. 조이 제독은 이후 10개월 12일 동안 공산주의자들의 억지와 정치선전, 지연전술과 씨름해야 했다. 조이 제독은 휴전협상 과정에서 얻은 교훈을 이렇게 정리했다. 공산측이 진실로 알아듣는 논리는 오직 힘뿐이다. 계급·명성·직위는 두 번째 고려 사항이다. 차선의 팀으로는 절대 안 된다. 결코 안 된다. 크건 작건 간에 모든 문제에서 공산측에게 똑같은 양보를 요구하라. 보여주어라. 합리적인 기간이 지나도 진전된 것이 없다고 생각되면 협상을 종결시켜라. 당신이 말을 많이 할수록 더 많은 표적들을 교활한 공산주의 선전용으로 제공하게 된다. 공산측 협상자들은 반응이 별로 없는 상대를 당혹해하고 두려워한다. 사람들에게 이를 알려주어야 한다. 국가이익에 치명적인 경우에만 그것을 변경시켜야 한다. 적이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협상해서는 안 된다.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표단 요원 선정시 지적 능력이 첫 번째 고려 요소이며, 평판·계급 및 직책은 두 번째 고려 요소이다. 지구력 그리고 논리성에 대항하는 냉철한 처신이 정전회담 대표단의 가장 중요한 특성처럼 보였다.” 제네바 핵합의 등 북한과의 회담에 나섰던 미국측 대표들은 북한 외교관들의 능력과 끈기, 집요함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제1·2차 남북 정상회담은 모두 평양에서 열렸다. 장소 선정에서부터 북한에 지고 들어간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을 서울로 초청했지만, 김정일은 오지 않았다. 그 이유 가운데 상당 부분은 ‘단순히 회담을 진척시키기 위하여 공산측으로부터 아무 것도 받지 않고 양보’만 하거나 서두르는 태도를 보인 데 기인한 것이다. 반면에 1992년 북한이 남북기본합의서에 동의한 것은 소련·동구 사회주의의 붕괴로 북한이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던 데다가, 당시 노태우 정권이 북한측에 대해 회담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공산주의자에게 1인치를 주면 그들은 1마일을 가지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공산주의자들을 절대로 믿지 말라고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공산주의자들의 협정 신뢰성을 믿는 사람들은 낡은 동아줄에 위험천만하게 매달려 있는 것과 같다”, “어떤 식으로 되어 있든 간에 공산주의자와의 약속은 믿지 마라. 공산주의자의 행동만 믿어라”는 말도 했다. 평화협정 운운하는 달콤한 얘기가 나오는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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