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10.27. 03:11
지난 한 달 서울시청 외벽에는 김정은 사진이 담긴 초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백두산에서 손을 맞잡아 들어 올린 채 환하게 웃는 장면이다. 현수막에는 '한반도의 운명을 바꾼 남북 정상회담, 서울시도 함께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그 전에는 두 사람이 판문점에서 만나 악수하는 사진 현수막을 보름간 붙여 놓았다.
▶서울 시내에 '환영 김정은 위원장님'이란 정체불명 플래카드가 걸리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인공기를 흔드는 1인 시위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대한민국 수도 청사에 김정은 사진이 걸리는 것은 별일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정말 김정은은 어떤 사람일까.
▶한국에 온 미국 인권재단 알렉스 글래드스타인 전략기획실장은 "서울 시민 세금으로 독재자 사진을 서울시청에 걸어놓은 것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그는 그냥 '독재자'라고 했으나 김정은을 '독재자'라고만 할 수 있을까. 세상에 독재자는 많지만 사람을 고사총으로 박살 내 죽이고 시신을 불태워 없애는 독재자는 그리 흔치 않다. 이복형을 외국 공항에서 최악의 화학무기로 암살할 수 있는 독재자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런 독재자가 서울 한복판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글래드스타인 실장은 "외국인에게 서울시청의 김정은 사진은 한국 정부가 북한 인권에 무관심하다는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고 했다. 한국 정부는 북한 주민 인권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김정은 정권의 인권유린을 방조하고 있다.
▶대통령은 "평양의 놀라운 발전상을 보았다"고 했고 여당 의원은 "평양은 홍콩·싱가포르와 구별이 안 될 정도"라고 했다. 그렇게 발전하고 홍콩·싱가포르 수준인데 왜 우리가 수십, 수백조원을 지원해야 하나. 여당의 유력 의원은 "북한은 내성이 생겨 제재는 소용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왜 대북 제재를 완화해달라고 유럽까지 가서 매달리나. 국내에서 알아주는 북한 전문가 한 사람은 올해 북한의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 5%로 추정했다. 대북 제재의 효과일 것이다.
▶글래드스타인 실장은 "문 대통령이 부모님이 북한 태생이고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는데도 북한 인권 문제에 소홀한 것은 이해 안 되는 슬픈 일"이라고 했다. 한국 운동권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한국 인권 변호사는 북한 주민에겐 인권탄압 변호사와 같다. 서울시청의 김정은 사진은 어제 내려졌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사진이 또 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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