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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아르헨티나型 실패'의 전주곡

바람아님 2018. 11. 27. 09:02
문화일보 2018.11.26. 12:00



文대통령 곧 아르헨티나 방문

G20에선 ‘北편향 외교’ 접고

국가 퇴행 현장도 제대로 봐야

페론式 포퓰리즘이 쇠퇴 씨앗

임금 무리한 인상과 親勞 편향

한국의 최근 상황에 타산지석


문재인 대통령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30일부터 이틀간 남미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한다. 올해 마지막 다자 정상 외교무대인 부에노스아이레스 G20 정상회의는 193개 유엔 회원국 중에서 경제적 영향력이 큰 상위 20개국 정상이 모이는 프리미엄 클럽이다. 앞서 열린 다자간 지역협의체인 아셈(ASEM) 정상회의나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는 격이 다르다. 6·25전쟁 후 최빈국이었던 한국이 반세기 만에 G20 멤버가 됐다는 것은 한·미 동맹과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를 기반으로 한 국가 발전전략이 옳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함부르크 G20 정상회의에도 참석했지만, 당시는 다자 정상외교 데뷔 무대였던 만큼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이번 회의에서는 2010년 G20 서울 정상회의 때 확립한 한국의 조정자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 서울 회의 때 이명박 대통령은 불공정 무역을 둘러싼 미·중 갈등은 물론, G20 내부의 선진국과 신흥경제국 간 입장을 조율하며 ‘다 함께 성장을 위한 개발 컨센서스’ 등을 이끌어 중재자 역할을 인정받았다. 따라서 문 대통령은 아시아 첫 G20 정상회의 주최국 정상답게 이번 회의에서 미·중 갈등 및 보호무역주의 해소 문제 등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아셈·APEC 정상회의 때처럼 무조건적으로 대북 제재 완화를 촉구하는 외골수 외교는 피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G20 현장에서 아르헨티나의 추락 원인을 직시했으면 한다. 아르헨티나는 라틴어로 은(銀)을 뜻한다. 그 정도로 이 나라는 토지가 비옥하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에는 18차선 도로가 있고, 국회의사당과 오페라 극장 등 대형 건축물도 아주 화려하다. 20세기 초 아르헨티나가 잘나갈 때 조성된 것들로, 이 나라의 좋은 시기(Belle Epoque)를 상징한다. 그러나 나라 곳간이 비면서 보수가 이뤄지지 않아 내부시설은 엉망이다. 2001년 취재를 갔을 때 이 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7170달러였는데 2008년 1만 달러를 돌파한 이래 여전히 이 수준이다. GDP 성장이 중단됐다는 것은 경제가 후진(後進)한다는 뜻이다.


100년 전 아르헨티나는 곡물 및 육류 수출로 GDP가 매년 6% 이상씩 성장하는 부국이었다. 1·2차 세계대전을 피하고, 오히려 군수물자 공급국이 되면서 5대 부국 반열에 들었다. 그런 나라가 추락국의 대명사가 된 것에 대해 경제학자들조차 의문을 제기하곤 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사이먼 쿠즈네츠는 “세계엔 4개의 국가 유형이 있는데 선진국과 후진국, 그리고 일본과 아르헨티나”라고 분류했다. 일본은 급속한 산업화를 통해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모델이고, 아르헨티나는 경제가 정체되면서 후진하는 모델이라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지속적인 경제 후퇴 현상에 대해 ‘100년의 고독에 갇힌 나라’라는 지적도 나온다. 남미의 고질적 혼란상을 그린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100년의 고독’에 빗댄 표현이다.


아르헨티나가 실패 국가가 된 원인으로는 군부 쿠데타 빈발에 따른 정정 불안, 경제 정책의 부재 등이 지적되지만, 결정적인 것은 후안 도밍고 페론 시대에 뿌려진 포퓰리즘 씨앗이다. 1946년 노조의 지지 덕분에 대통령에 당선된 페론은 이듬해 노동자 임금을 전년 대비 25%, 다음 해 또 24% 인상했고 저소득층을 위한 대규모 복지 제도를 실시했다. 페론은 국부(國富)를 미래에 투자하는 대신 친노동 포퓰리즘 정책으로 일관했고 그 결과 노조는 정권의 전위부대가 됐다. 부패청산이라는 미명 아래 대법원의 판사들을 물갈이했고 자유 언론을 탄압하며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중시했다. 이에 따라 국가기관들은 부실해졌고, 페론 이후에도 페론주의 악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과정에서 지도층의 애국심도, 국가를 살리려는 중심 세력도 서서히 사라져 갔다.


문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과 민노총 행태를 보면 ‘한국판 페론주의’ 출현 전주곡이 아닌지 불안감이 든다. 이대로 가다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한국의 기적은 사라지고, 아르헨티나 유형의 후진 국가가 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아르헨티나 현장에서 페론주의 폐해를 직시하고, 집권 중반기를 맞아 정책 전환 필요성을 결단한다면 그것만으로도 G20 정상회의 출장은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