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태평로] '검찰 파쇼'가 되려 하나

바람아님 2018. 12. 26. 09:23

조선일보 2018.12.25. 03:15

 

말끝마다 '정의' 내세우며 법원마저 공격하는 검사들
수사로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총장은 수사팀을 두둔했다
이명진 논설위원

요즘 검사들에게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정의'와 '헌법'이다. 적폐 수사 주요 영장이 기각될 때마다 거의 어김없이 이 말이 나왔다. 전직 기무사령관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하자 "정의에 반(反)한다"고 했다.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범죄자 취급을 하며 법원이 수사를 방해한다고 공격했다. 전(前) 대법관들 영장 기각에는 "반헌법적 중범죄의 전모 규명을 막는 것"이라고 하고, '노조 방해' 사건으로 수사받던 기업인을 가리켜 "중대한 헌법 위반 범행을 저지른 자(者)"라고 했다. 검찰 수사공보 준칙에 '주관적 가치 평가'나 '유죄 예단 표현'은 쓰지 말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도 거리낌이 없다. 사람을 향한 적의(敵意)마저 느껴진다.


검찰이 법원 결정에 공개 반발하는 건 외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이 나라에선 종종 있어 왔다. 그래도 과거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툭하면 판사들을 '반헌법' '반정의'라고 낙인찍어 몰아붙인다. 수사기관이면서 심판관이라도 된 것처럼 군다. 반년 넘게 사법부 수사를 하다 보니 법원마저 때론 거칠게 다뤄줘야 하는 '적폐 집단'으로 여기게 된 건가.


그러나 '정의로운 검사들'의 수사 방식은 정작 정의롭지도 않고, 헌법적이지도 않다. 영장 실질심사에 나가려고 제 발로 찾아온 3성(星) 장군에게 억지 이유를 갖다 붙여 수갑을 채웠다. 모멸감을 줘서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았다. 자의적 법 해석, 권한 남용이 낳은 결과다.


대법관들 영장은 '혐의가 성립하는지 의문'이라서 기각됐는데 언제 수사가 끝날지 기약이 없다. 영장 재청구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법리와 증거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추정과 의심을 버무려 수사 그물을 쳤다. 불구속 수사·재판 원칙과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무죄 추정 원칙은 무시됐다.


기업 노조 방해 수사는 다른 사건 압수 수색을 하다가 우연히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시작됐다. 그 뒤 9차례 압수 수색을 더하며 수사가 가지를 뻗었다. 이런 식 별건(別件) 압수와 수사 방식이 부당하다는 판례와 사회 공감대가 자리 잡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검찰은 노동 3권을 훼방 놓은 기업을 혼내줬다고 자평할지 몰라도 '적법 절차'는 먼 과거로 퇴행했다.


더 큰 문제는 검찰에서 누구 하나 '문제 있소'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올 7월 대검 인권부가 출범했다. 일선 검찰청 일손이 부족해 쩔쩔맨다면서도 중견 간부 10명이 차출됐다. 인권부 임무 중에 피의자 변호사 입장에서 수사의 문제점을 짚어내 오판(誤判)과 인권침해를 막는다는 게 들어 있다. 가톨릭 시성(諡聖) 절차에 나오는 의도적 반대자인 '악마의 변호인'을 본떴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를 받던 사람이 목숨을 끊는 일이 이어지는데도 악마의 변호인이 무슨 역할을 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인권 검찰'을 만들겠다던 검찰총장은 기무사령관 투신 사건이 터지자 "현안 수사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정립되어 가는 불가피한 과정"이라며 수사팀 두둔부터 했다. 검사들 사기가 사람 목숨보다 중(重)한가.


노무현 전 대통령 비극 이후 검사들이 숨죽여 읽던 책이 있었다. '거악(巨惡)을 잠 못 들게 한다'던 도쿄지검 특수부의 몰락 과정을 그렸다. 그 책 첫머리에 검찰권 남용을 경계한 옛 일본 검사총장의 취임사 한 구절이 걸려 있다. "검사는 수사가 정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해서는 안 된다. 수사로 세상이나 제도를 바꾸려 하면 검찰 파쇼가 된다."

지금 우리 검찰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 결코 가서는 안 되는 길로 내닫고 있는 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