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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의 말과 글] [120] 우리는 왜 늘 돈에 쪼들릴까

바람아님 2019. 10. 20. 22:34

(조선일보 2019.10.19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돈을 빌리지 않았다. 당당하게 내 능력을 인정받았다!

2000년대 초반 한 대기업 카드사의 카드론 광고 문구였다.

지하철 역사에서도 신용카드 가입이 가능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알다시피 몇 년 후 신용 불량자가 쏟아졌다.

댄 애리얼리의 '부의 감각'은 돈에 대한 우리의 비이성적인 인지적 편향(심리적 회계,

매몰 비용 등등)을 파헤친 책이다.


'이 커피는 하루에 4달러입니다'라는 말과 '이 커피는 1년에 1460달러입니다'라는 말은 같은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비슷한 예로 사람들은 은퇴 뒤에 현재 소득의 80퍼센트만으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고 대답하지만, 현재 소득 가운데 20퍼센트가 줄어들면 제대로 살지 못할 거라고 응답했다.

같은 말에 반응이 왜 이렇게 다를까.


가령 100달러짜리 티셔츠에는 눈이 가지 않지만 200달러짜리 티셔츠 옆에 '파격 50퍼센트 세일!'이란 문구가 붙어 있다면

눈길이 간다. 이 역시 심리적 편향과 연관 있다. 과거의 가격이 '닻'(앵커링 효과) 역할을 하며 가격이 싸 보이기 때문이고,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세일 문구가 눈에 띄어 선택 폭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격표에 무엇이 쓰여 있든 100달러는 100달러일 뿐이다.

저녁으로 뭘 먹을래, 라고 묻는 것과 치킨과 피자 중 뭘 먹을래, 라고 묻는 건 어떤가.

사람들은 대부분 둘째 질문을 더 좋아하는데, 머리를 더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우리 뇌는 '심리적 지름길'을 좋아한다. 이처럼 손쉬운 선택을 선호하는 뇌의 경향 때문에 우리는 애초에

사려던 물건은 잊고, 1+1이나 반값 세일, 미끼 상품에 휘둘리는 것이다.


"만약 아인슈타인이 물리학자가 아니라 경제학자였다면 그는 그 유명한 상대성 이론을 E=mc²이 아니라 '100달러〉

200달러 반값 할인'으로 바꿨을 것이다."


심리학을 꿰뚫은 마케터와 광고업자들에게 매번 지고야 마는 내겐 잠언 같은 말이다.




(댄 애리얼리) 부의 감각
댄 애리얼리,제프 크라이슬러 지음/ 청림출판/ 2018/ 443 p.
320.4-ㅇ245ㅂ=2/ [정독]인사자실/ [강서]2층 인문사회자연과학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