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2019.12.14. 17:12
▲ 계곡의 축대 위에 기둥을 세운 임경당과 다리 위에 누각을 얹은 우화각 풍경. 송광사를 대표하는 사진 구도이다. |
ⓒ 이돈삼 |
'송광사에 가서 계율 자랑하지 말라'는 말은 불가에서 전해지고 있다. 산 너머 선암사에 가선 문장을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대흥사에서는 염불을, 백양사에선 인물을, 화엄사에선 주먹을 자랑하지 말라는 말도 전해진다.
송광사는 보조국사, 진각국사 등 16명의 국사를 배출한 절집이다. 효봉스님과 구산스님에서 법정스님까지 훌륭한 선승들이 여기에 머물면서 한국불교를 일으켰다. 계율자랑을 하지 말라는 이유다.
▲ 송광사 대웅보전 전경. 절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탑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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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광사 부도밭. 한국불교의 승맥을 잇는 종갓집답게 부도밭도 남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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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결사의 도량으로 삼았다. 정혜결사는 불교공동체를 일컫는다. 기존의 귀족불교를 비판하며 불자들의 각성을 촉구한 불교혁신 운동이다. 지눌은 기득권을 쥐고 체제수호를 외치는 교종(敎宗)에 맞서, 참선수행을 통한 깨달음을 강조한 선종(禪宗)을 이끌었다.
송광사는 정혜결사를 거치면서 대가람이 됐다. 보조국사의 법통을 진각국사가 이어받으면서 16국사로 이어졌다. 승보사찰의 지위를 굳건히 지켰다. 경내에 16명 국사의 진영을 봉안한 국사전(國師殿)이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송광사는 수준 높은 문화재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보물창고다. 16국사의 진영을 봉안한 국사전과 목조삼존불감 등 4점이 국보로 지정돼 있다. 대나무 조각을 엮어 불경을 적은 경질(經帙), 대장경 목판을 보관하는 나무상자 경패(經牌), 금동요령(金銅搖鈴) 등 18점의 보물도 있다.
금나라에서 들여온 놋쇠로 만든 발우 능견난사(能見難思)와 비사리구시도 볼거리다. 능견난사는 접시와 흡사하다. 이리저리 포개도 빈틈없이 꼭 겹쳐지는 명물이다. 어찌나 가공기술이 빼어나든지, 똑같은 그릇을 만들려고 해도 만들 수 없었다고 한다. 하여, 눈으로 볼 수는 있어도 속을 헤아리기 어렵다는 뜻으로 이름 붙었다.
▲ 송광사의 구시. 한번에 4000명 분의 밥을 담았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수행하는 승려가 많았다는 얘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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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를 대표하는 풍광은 계곡과 어우러진 전각이다. 사진작가들, 아니 송광사를 찾는 여행객이라면 누구라도 사진을 찍고 지나는 풍경이다. 계곡의 축대 위에 기둥을 세운 임경당과 다리 위에 누각을 얹은 우화각, 그리고 우화각 아래 홍예교가 한데 어우러진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 송광사와 불일암을 잇는 숲길.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고즈넉한 멋을 선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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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해남 우수영에서 태어난 법정스님(박재철)은 목포상고를 졸업하고 전남대학교에 다니다가 출가했다.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를 사회운동으로 승화시킨 스님이다. 스님은 불일암에 7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17년 동안 머물렀다.
▲ 대숲터널 끄트머리에서 만나는 불일암. 생전의 법정스님이 살았던 집으로, 무소유의 산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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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일암 전경. 법정스님의 영정사진과 함께 스님이 생전에 앉았던 나무의자가 놓여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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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스님이 수목장으로 잠들어있는 향목련과 불일암. 법정스님이 생전에 후박나무라 불렀던 그 나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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