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경철 서울대 교수·
- 서양근대사
이 책에서 블로크는 직설적으로 질문한다.
"우리는 방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패배를 당했다.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가?"
그는 일단 프랑스 군사령부의 무능에서 직접적인 원인을 찾았다. 그러나 물론 그들에게만 모든 잘못을 돌려서는 안 된다. 책임은 결국 모두가 져야 한다. 블로크는 프랑스인의 의식 상태를 해부하여 사회 전체가 잘못된 의식을 키우고 있었다고 말한다.
국민들은 1차대전 이후 피로감과 열패감에 빠져 있어 실제로는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적절한 때에 그 힘을 동원할 능력을 상실했다. 지도자들은 마치 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지식인들, 특히 자신과 같은 역사가의 책임이 크다고 그는 반성했다.
책의 말미에 그는 프랑스가 자신의 운명을 다시 지배하게 될 때가 언제일지 그리고 그것은 어떤 식으로 찾아올지
"늙은 역사가는 머릿속으로 여러 상상을 해 본다"고 비장하게 썼다.
사실 오늘날의 역사가들은 패전의 원인에 대한 블로크의 분석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아카데믹한 논쟁이 아니라 고통받는 조국을 어떻게 구할 것이냐' 하는 실천의 문제였다.
2년 후 그는 '나르본'이라는 암호명을 쓰며 레지스탕스 활동에 가담했다.
불행히도 친독(親獨) 비시 정부의 졸개들에게 체포되어 게슈타포에 넘겨진 그는 몽뤼크 감옥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
1944년 6월 16일 리옹 북동쪽의 벌판에서 26명의 다른 레지스탕스 대원들과 함께 총살당했다.
마지막 순간 옆에 있던 16살 소년 레지스탕스 병사가 덜덜 떨며 "아프겠죠?" 하고 물었다.
그의 손을 잡으며 "아니란다. 전혀 아프지 않을 거야" 하고 위로한 후 블로크는 마지막으로 "프랑스 만세!"를 외친 후 쓰러졌다.
위대한 역사가는 스스로 위대한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