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그림, 詩에 빠지다]인생길의 험난함을 어찌 산에 오르는 것에 비할까-이백 촉도난

바람아님 2014. 2. 21. 20:38
촉으로 가는 길의 험난함이여 (蜀道難)
이백 (李白)

아!아! (噫吁戱)
험하고도 높구나 (危乎高哉)
촉으로 가는 길의 험난함은 푸른 하늘 오르는 것보다 어렵네 (蜀道之難難於上靑天)
잠총과 어부 촉나라 연 것 어찌 그리 아득한가 (蠶叢及魚鳧開國何茫然)
그로부터 사만 팔천 년을 진나라 변방 인가와 통하지 않았네 (爾來四萬八千歲不與秦塞通人煙)
서쪽 태백산으로 새나 다닐 만한 길 있어 (西當太白有鳥道)
아미산 꼭대기 가로지를 수 있네 (可以橫絶峨眉巓)
땅 무너지고 산 꺾여 장사들 죽으니 (地崩山摧壯士死)
구름다리와 돌길 잔도가 고리처럼 놓였다네 (然后天梯石棧相鉤連)
위로는 여섯 마리 용이 해 둘러싼 꼭대기 표시되고 (上有六龍回日之高標)
아래로는 부딪치는 물결 거꾸로 꺾여 냇물을 감도네 (下有沖波逆折之回川)
누런 학이 날아도 이르지 못하고 (黃鶴之飛尙不能過)
원숭이조차 건너려면 기어올라 매달릴 것 걱정하네 (猿猱欲度愁攀緣)
청니령 얼마나 구불구불한지 백 걸음에 아홉 번 꺾여 바위 봉우리를 감싸네 (靑泥何盤盤百步九折縈岩巒)
삼성을 만지고 정성을 거쳐 우러러 숨죽이며 (捫參歷井仰脅息)
손으로 가슴 쓸어내리며 길게 탄식하네 (以手拊膺坐長嘆)
그대에게 묻노니 서방으로 떠나면 언제 돌아오나 (問君西游何時還)
위태로운 길 험한 바위라 오를 수 없네 (畏途巉岩不可攀)
다만 보이느니 슬픈 새 고목에서 울고 (但見悲鳥號古木)
수컷 날면 암컷 따라다니며 숲 사이를 맴도네 (雄飛雌從繞林間)
또 두견새 달밤에 우는 소리 들려 빈 산에서 시름에 잠기네 (又聞子規啼夜月愁空山)
촉으로 가는 길의 험난함은 푸른 하늘 오르는 것보다 어렵네 (蜀道之難難於上靑天)
   
▲ 심사정 ‘촉잔도권(蜀棧圖卷)’(부분) 종이에 연한 색, 818×58㎝, 간송미술관, 1768년

    ‘촉도(蜀道)’는 쓰촨성(西川省)으로 가는 험한 길을 일컫는다. 쓰촨성은 2008년 5월 12일 강진으로 많은 사람이 사망한 곳이다. 그곳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했던지 이백은 ‘푸른 하늘 오르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다. 이백의 시 ‘촉으로 가는 길의 험난함이여(蜀道難)’를 조선 후기의 남종화풍의 대가 심사정(沈師正·1707~1769)이 그렸다. 제목은 ‘촉으로 가는 잔도(蜀棧)’다. 잔도(棧道)는 벼랑이나 낭떠러지처럼 사람이 다니기 힘든 곳에 나무로 선반을 엮듯이 매달아서 만든 길을 뜻한다.
   
   이 그림은 길이가 8m가 넘는 대작으로 두루마리다. 두루마리를 펼칠 때마다 우뚝우뚝 솟아 있는 바위산들이 파노라마처럼 끝없이 펼쳐져 장관을 연출한다. 심사정은 산의 형태를 선으로 그린 다음 그 안에 메마른 붓질을 반복해서 면을 채우는 화법을 즐겨 구사했는데 여기서도 예외는 아니다. 바위산의 단면을 도끼자국 같은 부벽준(斧劈皴)으로 그린 기법과 산 정상을 너럭바위처럼 깎아놓은 것도 심사정의 특기다. 산세가 험준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까. 기우뚱하게 배치된 산들이 밑둥이 잘린 듯 구름 속에 잠겨 있고 갈색조의 산등성이는 꿈틀거리듯 불안정하다. 이런 험한 길을 오로지 두 발이나 나귀에 의지해서 넘어가야 하는 나그네의 고단함. 이곳은 누런 학이 날아도 이르지 못하고 원숭이조차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는 촉으로 가는 길이다.
   
   
   휘모리장단 같은 붓질
   
   심사정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아찔하고 험준한 강산이 굽이굽이 펼쳐진 가운데 개미처럼 작은 사람들의 모습이 세밀하게 그려졌다는 점에서는 이인문(李寅文·1745~1821)의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가 떠오른다. 야트막한 집은 기괴한 암산 사이에 버섯처럼 들러붙어 있다. 벼랑 끝에 매달린 듯 위태로운 잔도에는 어김없이 길 떠나는 사람들과 수레가 등장한다. 잔도를 내기에도 마뜩잖은 절벽 위에서는 사람들이 도르래를 타고 아랫마을로 내려간다. 심사정의 작품에서 보이는 인물들과 가축과 건축물은 이인문의 ‘강산무진도’에서 메아리처럼 되풀이된다. 이인문이 얼마나 깊이 심사정의 화풍에 매료됐는지를 증명하는 자료다.
   
   다른 점이 있다면 후배 이인문은 무궁무진한 강산에 첫발을 들여놓는 발걸음을 천천히 여운 있게 시작했고, 선배 심사정은 도입부부터 압도될 만큼 험악한 촉도의 관문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림을 시작했다. 이인문의 붓질이 느린 장단의 진양조라면 심사정의 충격요법은 빠른 장단의 휘모리다. 이런 차이는 두 사람의 기질이나 그림을 풀어나가는 방법론의 차이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그 사람이 걸어 온 인생길의 차이에 기인할 수도 있다. 심사정의 화풍은 이인문을 비롯해 최북(崔北·1712~1786), 김유성(金有聲·1725~?), 이방운(李昉運·1761~?) 등에게 깊은 흔적을 남겼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넘어야 할 깔딱고개
   
   심사정이 이 작품에 붓을 댄 것은 62세 때인 1768년 8월이었다.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에 완성한 절필(絶筆)로 그의 작가적 역량을 온전히 쏟아부었다. 그의 신산스러운 생애를 되짚어볼 때 마지막 작품으로 ‘푸른 하늘 오르는 것보다 어렵다’는 촉도(蜀道)를 선택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물론 이 작품은 그의 7촌 조카 심유진(沈有鎭·1723~1787)의 부탁을 받아 붓을 들었고, 제작 당시 그는 몇 달 후에 찾아올 죽음을 예감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작품 속에서 그가 살아온 생애를 떠올리는 것은 그의 삶이야말로 촉도를 넘어가는 것만큼 험난했기 때문이다.
   
   그는 영의정을 배출한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과거부정시험에 연루되자 ‘파렴치범’의 후손으로 낙인찍히게 됐다.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왕세자(나중에 영조) 시해 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대역죄인의 자손으로 낙인찍혔다. 심사정과 그의 아버지는 목숨은 건졌으나 평생 벼슬길에 나갈 수 없었다. 다행히 심사정은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려 장안의 종잇값을 올릴 정도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와의 친분을 드러내놓고 자랑할 만큼 마음을 터놓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넘는 고갯길에는 언제나 혼자였고,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혼자 걷는 먼 길은 매순간 주저앉고 싶을 만큼 힘든 깔딱고개였다. ‘촉잔도권’에서 위험스러운 잔도 곳곳에 등장하는 인물은 실제로 그 고개를 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심사정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고 고갯길을 넘었다.
   
   
   욕심을 덜어낸 자리에 이해의 우물이
   
   상처가 많다는 것이 꼭 인간으로서 결격사유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매순간 뜨겁게 살다가 데었거나 진실 곁에 너무 가까이 다가간 까닭에 베인 자국일 뿐이다. 상처가 많은 사람은 안다. 과적된 욕심을 덜어낸 자리에 깊은 이해의 우물이 고여 있다는 것을. 심사정이 한번도 디뎌보지 못한 촉도를 실감나게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생애에서 수없이 많은 촉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삶으로 촉도를 이해했다.
   
   류시화 시인은 상처를 ‘세월이 지나서야 열어 보게 되는 선물’이라고 노래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넘어야 할 깔딱고개 앞에 설 때가 있다. 남들이 보면 우스워 보이는 고갯길이 내게는 숨이 깔딱 넘어갈 만큼 힘들게 느껴질 것이다. 험한 고개를 넘어가면서 손발에 생채기가 생겨 그 아픔에 주저앉게 되거든 되새겨볼 일이다. 내 생의 어느 지점에서 험한 산을 넘으면서 입은 상처는 오랜 세월이 지나서 받게 되는 선물이라는 것을.

 

 

 조정육
   
  홍익대 한국회화사 석사, 동국대 박사 수료. 성신여대 대학원, 동국대 대학원 강의. 저서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거침없는 그리움’ ‘꿈에 본 복숭아꽃 비바람에 떨어져’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 ‘우리나라 대표 그림’ ‘그림공부, 사람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