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거이 (白居易)
심양강가에서 밤에 손님을 전송하는데 (潯陽江頭夜送客)
단풍잎 억새꽃에 가을은 쓸쓸하여라 (楓葉荻花秋瑟瑟)
주인은 말에서 내리고 손님은 배에 있는데 (主人下馬客在船)
술 들어 마시려하니 음악이 없구나 (擧酒欲飮無管絃)
취하여도 기쁘지 않아 슬피 헤어지는데 (醉不成歡慘將別)
이별할 시간 아득한 강에 달빛만 잠기어 있네 (別時茫茫江浸月)
문득 물 위로 비파 소리 들려오니 (忽聞水上琵琶聲)
주인은 돌아갈 것을 잊고 손님은 떠나지 않았네 (主人忘歸客不發)
▲ 비파행도 작자 미상, 27×30.7㎝, 모시에 색, 선문대박물관 |
이런 궁벽한 시골에 친구가 왔다 간다. 2년 전, 뜻하지 않게 변방으로 좌천된 후 장안에서 오는 말발굽 소리가 끊어진 지 오래였다. 그런 먼 곳을 친구가 찾아왔으니 그 반가움을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꿈 같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드디어 헤어질 시간. 이제 가면 언제 볼까. 보내는 사람이 아쉬워 쉽게 친구를 놓아주지 못한다. 겨우 마음을 수습하여 친구를 배에 태우고 나니 이별주라도 한잔 나누어야 허전함을 달랠 수 있을 것 같다. 친구가 탄 배에 올라 술잔을 주고받는다. 이럴 때 마음을 달래 줄 음악이라도 한 곡 들었으면 싶은데 어디선가 쟁그렁쟁그렁 비파 뜯는 소리가 들린다.
백거이(白居易·772~846)는 자가 낙천(樂天), 호가 향산거사(香山居士)로 중당시대(中唐時代·766~826)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그는 29세 때 최연소로 진사에 급제하여 관계에 입문했는데 43세(815년)에 정치 사건에 휘말려 심양강이 있는 구강군(九江郡)으로 좌천되었다. ‘비파의 노래’는 그때 지은 시다.
귀양객 공감 자아낸 기녀의 일생
친구를 배웅하다 뜻하지 않게 비파 소리를 듣게 된 백거이는 그 소리를 찾아 배를 옮긴다. 강 가까이 살다 보니 땅이 낮고 축축해 누런 갈대와 참대만이 나는 곳이 이곳아닌가. 아침 저녁으로 듣는 소리라고는 두견새가 피를 토하고 원숭이가 애절하게 우는 울음뿐인 곳에서 선계(仙界)의 음악이라도 들은 듯 귀가 밝아지는 소리가 들리다니. 백거이는 비파의 주인공에게 가서 음악을 청한다. 비파 소리가 거듭되고 술을 더하자 등불을 돌려 이곳에 오게 된 사연을 물어본다. 본래 그녀는 장안의 기녀로 일찍이 이름난 명인에게서 비파를 배웠는데, 나이가 들고 용모가 시들어 장사치의 아내로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곡조가 끝나자 시름에 잠긴 채 스스로 젊었을 때의 즐겁던 일과, 이제는 영락하여 초췌해진 것이며, 강호를 떠돌아다니며 전전하게 된 일 등을 이야기한다. 그녀의 처지가 지난해 황제와 하직하고 귀양 와 살며 병들어 누워 있는 자신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에 백거이는 그녀에게 다시 한 곡 비파 연주를 부탁하고 그녀를 위해 비파의 노래를 지어준다. 비록 그녀를 빗대어 지은 시지만 그 속에는 폄적된 자신의 심정을 담았다. 퇴기의 모습에서 자신을 보는 고적한 시인의 마음이 저녁 파장을 앞둔 늦가을처럼 쓸쓸하다. 가을밤이 점점 깊어진다.
‘비파행도’는 백거이의 ‘비파행’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그림은 경물이 한쪽으로 쏠리게 그린 편파 구도로 이야기의 내용이 왼쪽에 치우쳐 있다. 대신 오른쪽에는 넓은 수면이 펼쳐져 있고 하늘 위에는 흐릿한 달이 떠 있다. 강안(江岸)에는 숱한 이별을 지켜보았을 네 그루의 버드나무가 안개 속에 잠겨 있고 나무 아래에는 두 척의 배가 정박해 있다. 두 척의 배 중 작은 배에는 사공을 제외하고 텅 비어 있다. 백거이와 친구가 비파 소리를 듣기 위해 기녀가 있는 큰 배로 옮겨 탔음을 알 수 있다. 두 사람은 의자에 단정히 앉아 기녀가 타는 비파 소리를 들으며 회상에 잠겨 있다. 사공은 깊이 잠들어 있다. 시간이 꽤 지났음을 말해 준다. 말을 몰고 온 마부도 졸고 있다. 기다림에 지칠 만큼 이별 의식이 늦어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관복을 입고 있다. 헤어지는 장소까지 예를 갖춰 관복을 입고 와야 할 사이라면 손님은 친구가 아니라 공적인 임무를 띠고 온 사람일까. 여기서 잠시 필자는 앞에서 쓴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왔다는’ 표현을 고쳐야 하나 망설여진다. 그러나 백거이가 강나루까지 따라 나와 쉽게 헤어지지 못하고 한 배에 올라 이별주를 더 해야 할 만큼 친한 사이라면 공적인 일로 온 사람이라도 친구나 다름없다. 백거이가 ‘손님(客)’이라 쓴 단어를 필자가 굳이 ‘친구(友)’로 해석한 이유다. 이쯤되면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라는 이호우 시인의 시구절은 ‘객지에서 만난 사람은 누구나 친구 같다’로 전환될 것이다.
비파의 노래 속에는 기녀가 없다
필자가 ‘손님’을 ‘친구’라고 고집한 이유가 꼭 객지에서 만난 반가움만을 생각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당나라 때 시인 중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주고받은 사람이 여럿 알려져 있다. 두보와 이백, 백거이와 원진, 유종원과 유우석이 그들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원진과 백거이의 시는 그 시에 담긴 사연이 뭉클하다. 원진은 백거이가 강주 사마로 좌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위로하는 시를 지었다. 백거이는 강주 사마로 떠나는 배에서 원진의 시를 읽었다. 가물거리는 등불 속에서 눈이 아프도록 친구의 마음을 읽는 백거이의 눈이 젖었다. 백거이가 강주 사마로 강등되었을 때 원진 또한 통주사마로 귀양 가서 학질에 걸려 누워 있는 신세였기 때문이다. 친구를 위로하는 시를 쓸 때 그 마음이 어찌 예사로웠겠는가.
지금 배 안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이 원진과 백거이라고 확신할 만한 증거는 없다. 그러기에는 두 사람의 자세가 너무 경직되어 있다. 만약 이들이 친구 사이라면 공무를 빙자하여 그리운 친구를 만나러 온 것일까. 그러면서 공무원이 사적인 목적으로 세금을 낭비한다고 비난받을까 봐 짐짓 공무를 행하는 양 엄숙한 체하는 걸까. 헤어지기가 아쉬워 이별의 시간이 길어지면서도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온갖 추측이 왔다갔다 한다. 비파를 타는 기녀의 모습도 언뜻 보면 남자 같다. 아무리 봐도 한때 장안에서 이름을 날린 최고의 기생이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나마 이 작품은 나은 편이다. 이 작품과 비슷하게 그린 ‘비파의 노래’가 삼성리움미술관의 ‘만고기관첩(萬古奇觀帖)’에도 실려 있는데 이 그림에서는 아예 기녀의 모습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림 제목 또한 ‘비파행’ 대신 ‘심양송객(潯陽送客)’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그림을 그린 장득만(張得萬·1684~1764)의 개인적 생각에 의해서가 아니라 ‘만고기관첩’이 지닌 감계적(鑑戒的) 목적에 맞추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얌전한 그림이 되었을 것이다. ‘만고기관첩’은 왕세자의 문인적 소양을 높이기 위한 교육적 목적으로 그려졌다. 서화책을 감상하는 열람자의 나이를 고려하여 수위를 조절한 것이다. 마치 현재 우리 사회에서 영화를 볼 때 ‘15금(禁)’이나 ‘19금(禁)’ 같은 등급을 적용하는 것과 같은 논리라 할 수 있다. 아무리 그렇다한들 이 서화책을 보는 학생이 ‘화(畵)’만 보고 ‘서(書)’는 안 볼 리 만무한데 그림에서 기녀를 빼고 그린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 같아 웃음이 나온다. 혹시 우리도 이렇게 보여주기 식의 문화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정육 홍익대 한국회화사 석사, 동국대 박사 수료. 성신여대 대학원, 동국대 대학원 강의. 저서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거침없는 그리움’ ‘꿈에 본 복숭아꽃 비바람에 떨어져’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 ‘우리나라 대표 그림’ ‘그림공부, 사람공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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